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이 이산가족 문제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발언을 크게 반겼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이런 기대와 실망이 반복된 만큼 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재미이산가족상봉 추진위원회의 이차희 사무총장은 8일 VOA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전날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역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30년 넘게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의 북한 내 가족 상봉을 위해 노력하면서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형식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언급한 사례는 종종 봤지만, 이렇게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해결 의지를 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란 겁니다.
[녹취:이차희 사무총장] “이것은 역사적 성명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국무장관이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건 우리에게 굉장한 소식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발언을 미국 정부가 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블링컨 장관의 발언이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촉진을 지원한다는 양측의 의지를 공유했다”고 밝힌 데 이어 나온 또 하나의 희소식이라며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앞서 7일 하원 외교위가 주최한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관련 질문에, 이산가족 문제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블링컨 장관] “This is just heart wrenching, knowing that people have been not only separated but don’t even know the fate of their loved ones. So what I can pledge to you is that we will absolutely work on this.”
블링컨 장관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의 운명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라며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미한일 3국 안보실장들도 지난 4월 워싱턴에서 회의를 마친 뒤 배포한 언론성명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신속한 해결의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히는 등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미국 고위 관리들의 공개 발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 이산가족 단체인 ‘이산가족 USA’(Divided Families USA)의 폴 리 대표는 8일 VOA에, 바이든 행정부가 과거 행정부와 다른 것은 “공개적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마이크 폼페오 전 국무장관 등도 재임 시절 이산가족 사안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를 대북 협상에서 비공개로 추진했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최고위급 수준에서 이에 대한 결의와 추진력을 계속 보이며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란 겁니다.
[녹취: 폴 리 대표] “But I think it's very significant that this issue has been mentioned publicly by the US secretary of state… So it's very significant that in that regard of continued commitment and momentum at the highest level of government for this issue,”
미국 내 이산가족 단체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런 공개적 발언이 실질적인 행동과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며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습니다.
과거 미북 협상과 법안 통과 등을 통해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가 협상 의제에서 누락되거나 북한 정권의 돌변 등으로 상봉이 공식적으로 이뤄진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중 강원도 원산에 있는 어머니, 여동생 3명과 생이별한 김경수 미국 아칸소대 전 교수는 블링컨 장관의 발언이 매우 반갑지만 낙관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경수 전 교수] “아주 반가운 소식이죠. 그러나 그게 이루어질는지 지난번에도 내가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다 와해되어서 희망이 없어졌잖아요. 미국 정부가 어떤 압력을 가하더라도 꼭 그것을 성사 시켜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 88세인 김 전 교수는 지난 수십년 동안 중국 내 북한대사관을 방문하고 한국의 대한적십자사와 방송국의 문을 두드리며 북한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전심을 다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며, “지금이라도 상봉 기회가 있다면 육체적이든 경제적이든 모든 노력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남북한 정부는 1985년 이후 총 21차례 대면 상봉과 7차례 화상 상봉을 통해 각각 2만 700여 명과 3천 700여 명이 만났지만 미국 내 이산가족은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한국계 영 김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 2월 미북 이산가족 상봉법안을 공동 발의한 뒤 VOA에,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이산가족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완전히 배제됐다”며, 미국 정부가 북한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도 상봉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재 117대 미국 하원에는 미북 이산가족 상봉법안과 결의안이 각각 발의돼 외교위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계류 중입니다.
‘이산가족 USA’(Divided Families USA)의 폴 리 대표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북 협상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한국 정부가 향후 상봉을 위한 기반 시설과 사전 준비 작업을 병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폴 리 대표] “I would just call on the U.S. governmen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o invest in setting up reunion infrastructure or at least family tracing infrastructure right now.”
미국 내 이산가족들이 모두 고령으로 장거리 여행이 힘들기 때문에 화상 상봉, 생사 확인 등 가족 정보를 추적하는 기술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또 민간단체들이 한인 이산가족 상황을 집계하고 상봉 신청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지원 노력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단체들은 지난 2019년에 미국 내 이산가족 97명의 상봉 신청서를 국무부와 미국 적십자사에 제출했지만 지난 3월에 파악한 결과 사망과 지병 등으로 규모가 절반인 45명으로 줄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의 관건은 이 사안을 인도적이 아닌 정치적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온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 여부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거 북한을 방문해 이산가족 상봉 사안을 협상했던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앞서 VOA에, 이 문제 해결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북한 정권의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녹취: 킹 전 특사] “I think the problem is the North Koreans don't see this as a humanitarian issue. They see the political issue they see as an issue they can use to put pressure on the United States and get the United States to make concessions.”
북한 정권은 미국, 한국과 달리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주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안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낼 지렛대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이차희 사무총장은 그러나 이산가족들이 80~90대 이상의 고령으로 해마다 규모가 줄고 있어 북한 정권이 정치적 카드로 쓸 기회도 거의 소진되고 있다며, 북한이 가족들의 마지막 소원을 인도적 차원에서 들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이차희 사무총장]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당국이 북한에 계신 우리 가족과 여기에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게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