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 석유재벌에 또다시 유죄판결

탈세 혐의로 복역 중인 러시아의 전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법원으로부터 또다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횡령혐의가 인정된 것은, 푸틴 총리의 정치적 입김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도 러시아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문) 호도르코프스키, 러시아 석유 재벌에서 죄수로 전락했는데, 감옥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네요.

답) 네. 출소를 1년 앞두고 또 다시 오랜 수감 생활을 해야 할 처지가 됐죠. 호도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석유 대기업 유코스 회장으로 있으면서 러시아 최고의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난 2003년 사기와 탈세 혐의로 체포된 뒤 죄수 신세가 됐습니다. 당시 8년 형을 선고 받고 7년째 복역 중이었으니까 1년 뒤면 출소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유죄판결을 받는 바람에 바깥세상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게 됐습니다.

문) 이번에는 횡령혐의가 인정됐다구요?

답) 네. 유코스 자회사에서 270억 달러 상당의 석유를 빼돌려 팔아 넘기고 돈세탁까지 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모스크바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검찰은 호도르코프스키에게 징역 14년을 구형했지만 아직 형량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형량은 그 동안 제출된 증거와 증언들을 검토해서 재판부가 선고할 예정입니다.

문) 그런데 이번 판결에 푸틴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호도르코프스키가 푸틴 총리의 눈밖에 났기 때문에 또다시 유죄판결이 나왔다는 주장이 야당과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호도르코프스키가 지난2003년 총선에서 야당에 정치 자금을 댔다가 푸틴 총리로부터 정치 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유죄판결이 내려질 때도 법정 밖에서는 호도르코프스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호도르코프스키 자신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법정 진술뿐만 아니라 수필과 서한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문) 서방국가들도 러시아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있죠?

답)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법원의 판결에 즉각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백악관은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판결과정에서 정당한 절차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있다며 부적절한 목적을 위해 법률체계가 남용됐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 장관도 이번 판결이 국제적 인권 의무를 준수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해 온 러시아의 명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도 재판 상황이 매우 걱정스럽다며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한 발 후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문) 러시아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답) 한마디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반응입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내 사법 사안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면서 서방국가들에서도 호도르코프스키가 지은 중죄에 대해서 중형이 선고됐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인들에 관한 사건이 수천 건이나 러시아 법원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유독 호도르코프스키 사건만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겁니다.

문) 호도르코프스키에 대한 정치 보복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뭔가요?

답) 푸틴 총리는 야당을 지지하거나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는 재벌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왔는데요, 오는 201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최소한 선거가 끝날 때까지 정적들의 손발을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푸틴은 이미 지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바 있습니다. 헌법상 연속해서 두 번까지만 대통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총리직으로 물러나 있지만 오는 2012년에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문) 그렇다면 재판부가 형량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정치보복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또 잃을 수도 있는 거군요?

답) 네. 비록 유죄판결은 났지만 형량에 따라서 재판부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나 1~2년 형을 선고한다면 온건파의 승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푸틴 총리보다는 온건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현대화를 주창해왔는데, 법치주의에서도 과연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