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2020상반기 미국 연방 대법원 주요 결정

지난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납세 내역 등 금융 자료 제출 판결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대법원 앞에서 남성이 '돈을 따라가라'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결정은 미국의 정치,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오늘은 2020년 상반기 연방 대법원에서 나온 주요 결정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금융 자료”

지난 7월 9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세 기록 등 금융 자료를 뉴욕주 검찰에게 넘기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불거진 트럼프 대통령의 불륜 추문과 관련해 수년간 수사를 벌여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 관련자들에게 입막음용으로 거액의 돈을 지불해 선거자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는데요. 뉴욕주 검찰은 2011년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트럼프 그룹’이 연방 정부와 주 정부에 낸 세금 명세를 포함해 금융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헌법상, 대통령은 재임 중 어떠한 형사소송에도 면책 특권이 있다며 공개를 거부해왔습니다.

그런데 미 연방 대법원은 7대 2로, 대통령의 면책 특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뉴욕주 검찰이 수사에 필요하다면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현재 연방대법관은 보수 성향 5명에 진보 성향 4명으로 갈리고 있는데요. 특히 다수 의견을 채택한 7명의 대법관 가운데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대법관 등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판사도 2명이나 포함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사법부의 제도적 독립을 재확인하고 3권분립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미 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요.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오바마케어 피임 조항”

7월 8일, 연방 대법원은 ‘오바마케어’의 피임 조항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전국민건강보험법(ACA)’, 일명 ‘오바마케어’에 따라 직장 여성들이 피임약을 복용할 경우, 고용주가 피임약 비용에 대한 보험 부담을 지도록 했는데요.

오바마케어를 절대적으로 반대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규정을 도입해, 고용주의 종교나 도덕적 신념에 따라 피임 비용을 보험 적용 대상에서 뺄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습니다.

그러자 펜실베이니아주와 뉴저지주가 소송을 제기했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연방 항소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이에 ‘경로수녀회(Little Sisters of Poor)’라는 가톨릭 단체가 이의를 제기하며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연방 대법원은 7대2로, 행정부가 예외를 인정할 권한이 있고, 이를 공표하는 과정에서도 절차를 따랐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에는 진보 성향 대법관 중 2명이 보수 진영의 의견을 따랐는데요. 여성 대법관 3명 가운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소니아 소토마요르, 2명은 반대를 표했습니다.

“성 소수자와 고용 평등”

지난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 역사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결정을 내렸습니다.

1964년에 제정된 미국 민권법 7조는 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이 조항이 말하는 성차별의 범위에 단순히 남성이나 여성이 아니라,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 차별도 포함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권법에서 금지한 차별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을 근거로 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동성애 직원을 해고한 고용주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현 정부의 기본 견해였습니다.

하지만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 등 6명의 대법관이 성 소수자의 고용 차별은 위법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연방 대법원의 이 결정은 성 소수자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로, 지난 2015년 연방 대법원이 내린 동성애 결혼 합법화 못지않게 성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불법체류청년추방유예제도(DACA)”

지난 6월,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던 불법체류청년추방유예제도, 일명 ‘다카(DACA)’ 폐지 노력에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다카는 지난 2012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도입된 미국의 이민 정책인데요.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와 불법으로 살고 있는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해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법에 어긋나는 조처라며 지난 2017년 공식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주 정부와 ‘드리머(Dreamer)’라고 불리는 다카 수혜자들의 소송이 이어지며,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오게 된 건데요.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5명의 대법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다카 폐지 추진 과정이 일방적이었다며 원고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다카 정책의 위법 여부를 판단한 게 아니라 절차상 문제에 대한 판단이라는 게 연방 대법원의 설명입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드리머들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혀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종교와 교육 기관 ”

지난 6월 30일, 연방 대법원은 5대 4로 종립학교에 대한 주 정부의 지원은 정당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종립학교란 종교단체나 기관이 설립해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말하는데요. 하지만 몬태나주에서 주 정부가 교회나 종교단체에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은 불법이라는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앞서 몬태나주 대법원은 주 정부가 종립학교나 기관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며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하지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차별은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종교의 자유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선거인단과 승자독식 방식”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연방 대법원에서 선거와 관련된 중대한 결정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이 대통령을 뽑는 일종의 간접선거입니다. 득표율에 따라 선거인단을 배분하는 메인과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는 이른바 ‘승자독식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주별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제도인데요. 하지만 어떤 선거인이 해당 주의 투표 결과를 따르지 않고 이른바 ‘반란표’를 던질 때 처벌할 수 있는지 연방 대법원에 물은 겁니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7월 6일,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고 만장일치로 선거인단은 해당 주의 선거 결과를 따라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지난 12일 치러진 폴란드 대선 결선 투표에서 유리한 출구 조사 결과가 나오자 부인, 딸과 함께 연단에 서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스 속 인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최근 재선에 성공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입니다.

지난 7월 12일에 열린 폴란드 대선 결선투표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야당 후보와의 접전 끝에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올해 48세로 변호사 출신인 두다 대통령은 보수 민족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정당에 가입하며 정계에 들어선 두다 대통령은 2015년 대통령으로서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공직과 의정 활동을 했고, 1년간은 유럽의회 의원도 역임했습니다.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2015년 대선 때는 법과정의당의 후보로, 2020년 선거에서는 폴란드 헌법에 따라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법과정의당은 두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기반입니다.

폴란드는 인구의 90%가량이 가톨릭 신자고, 지난 2005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배출했다는 자긍심이 강한 나라인데요. 법과정의당은 가톨릭교의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며 보수적이고 강력한 정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두다 대통령은 동성애를 강하게 반대합니다.

동성애 옹호는 공산주의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동성애에 비교적 관대한 유럽에서 두다 대통령의 언행은 인권 단체나 동성애자 옹호 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두다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유럽연합(EU)’과 폴란드의 관계는 더 깊은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두다 대통령은 2017년 이른바 ‘사법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관계가 불편한 판사들을 밀어내고 친정부 성향의 판사들로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그해 12월, EU 집행위원회는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 7조’를 발동해 회원국 폴란드의 법치 실태 조사에 나섰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폴란드 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거나 삭감하겠다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두다 대통령은 EU가 제안하는 난민 제도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EU 집행부는 EU 역내에 들어온 난민을 회원국이 분산 수용하는 이른바 ‘난민쿼터제’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두다 대통령은 각국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강요라며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두다 대통령은 또 취임 후 줄곧 폴란드 주둔 나토 병력의 확대를 꾸준히 요구해왔는데요. 최근에는 독일에서 철수하는 미군 병력 일부를 폴란드에 배치해달라고 요청해 트럼프 미 행정부의 승인을 얻어내는 데도 성공합니다. 하지만 폴란드의 이런 독자적인 행보를 바라보는 EU 집행부의 심기가 썩 편치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두다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유럽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그려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