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는 해외에서 범죄에 연루된 자국민에게 아무런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사 지원은 커녕 국적 확인조차 거부해 북한인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최근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주모 씨는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 지린성 장춘시에 있는 철북감옥에 수감돼 있었습니다.
2003년 창바이현의 한 인삼밭에서 인삼을 훔치다가 체포돼 자신이 모르는 범죄까지 더해져 강도와 상해죄로 11년 간 복역한 겁니다.
주 씨는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체포 뒤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북한 당국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영사 면담을 요청해도 북한 공관에서 모두 무시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중국 공안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탈북민들을 미결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 억울하게 많은 형량을 부과해도 북한 영사들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주 씨는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북한인들은 김일성·김정일 등의 대외적 권위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북한 공관이 공민이란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법원 판결 뒤 국적란에는 “무국적자”로 표기되고, 항소하려 해도 무국적자란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통일미래연대 대표인 북한 보안당국 간부 출신 최현준 씨는 15일 ‘VOA’에, 북한 정부는 범죄에 연루된 북한 주민을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현준 대표] “대부분 부정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중국과의 대외관계상 문제도 있고 북한이란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북한이 마약을 전파한다는 것으로 여론화될까봐, 북한 이미지 때문에 그 사람이 죽든 말든 우린 그 사람 모른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 부정해 버리죠.”
이와 관련해 복수의 한국 정부 소식통은 지난주 ‘VOA’에, 2009년 북-중 범죄인신원확인협정 체결 이후 감옥에 갈 때는 북한 국적으로 수용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영사 지원이나 보호 활동은 여전히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민 주 씨는 자신이 있던 철북감옥에 북한인 123명이 수감돼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운데 생활고를 이유로 탈북해 마약 거래와 절도로 수감된 죄수가 70%에 달했고 나머지는 살인과 사기 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중국에서 탈북민들을 돕다가 2003년 체포돼 4년 간 감옥에서 복역한 한국계 미국인 스티브 김 선교사도 석방 뒤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인 100 여 명이 함께 있었다고 말했었습니다.
탈북민 주 씨는 당시 철북감옥에 김 선교사와 함께 있었다며, 미국 영사가 자주 면회를 오고 특별대우를 받는 모습에 북한인들 모두가 부러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인 등 다른 수감자들 역시 정기적으로 영사 지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조국에 “커다란 배신감을 갖게 됐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세상 변화에 무지하고 정권의 거짓말에 세뇌돼 살아온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내 한국 총영사관에서 오래 근무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15일 ‘VOA’에, 중국 감옥 내 한국인 수감자들에게 1년에 두 차례 정도 영사들이 면회를 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생필품을 수감자들에게 전달하고 감옥에서 고문이나 부당 행위가 없는지 점검한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라종일 전 한국 국가정보원 1차장은 과거 ‘VOA’에, 북한의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범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북한 군 정찰국 소속 강민철이 옥사할 때까지 25년 간 북한 당국의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해 배신감을 토로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라종일 전 차장] “배신감도 느끼고 또 북한이 자기네들 존재도 부인하고 당시 도와주려고 한 게 전혀 없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15일 ‘VOA’에, 자국민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질렀어도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정상적인 정부의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북한도 가입한 영사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도 명시돼 있다는 겁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정상적인 나라이면 시민의 권리나 인권이 있는데, 외국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람들까지 권리를 어느 정도로 보호해 주는데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거죠.”
1963년 채택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협약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영사접견권을 보장하도록 명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사자는 영사 면담을 요청할 수 있고, 당사자의 조국 역시 파견국에 자국민 접견을 요구해 보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지난 1984년 이 협약에 가입했지만 해외 자국민 보호는 물론 북한이 억류 중인 외국인들에 대한 영사 접견조차 매우 까다롭게 적용해 지탄을 받아 왔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외무부는 지난해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에 대한 영사 접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는 빈협약과 자국민에 대한 영사 접근 권리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