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북한 방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은 백악관의 방북 승인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방문 뒤 국무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국무부가 31일 추가 공개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개인 이메일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010년 북한을 방문한 뒤 국무부에 제출한 방북 보고서가 포함됐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2010년 8월 25일부터 사흘 간 방북해 북한에 무단입국한 뒤 체포돼 8년 노동교화형과 70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 받았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보고서에서, 2010년 7월 21일 북한이 곰즈 씨 석방을 위해 자신의 방북을 원한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한 사람들은 곰즈 씨의 석방 요청이 받아들여질 사람은 오직 카터 전 대통령 뿐이며,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측의 제안을 거듭 확인한 뒤 백악관에 방북 요청을 받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8월 중순까지 승인이 나지 않았고, 이 즈음 북한은 방북 지연 때문에 곰즈 씨가 병원에서 수감시설로 이송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카터 전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이제는 방북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다음날인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방문했고, 이에 따라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백악관이 미국 정부를 대표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방북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방북을 승인했고, 자신도 그런 조건을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북한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즈 씨가 북한 법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그를 석방해 줄 것을 요청하는 메모를 자필로 작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이 메모를 전달했고, 이에 김 상임위원장은 당시 북한 주권을 침범한 미국인 3 명의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강조했다고 말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김 상임위원장과 4시간 동안 핵심 현안들을 논의했다며, 이 자리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북한 측 제안들에 대해 폭넓게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김 상임위원장은 북 핵 6자회담에 대해 ‘사망선고가 내려졌지만 아직 집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언급했다고, 카터 전 대통령은 밝혔습니다.
이밖에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박의춘 외무상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고,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밝혔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차 북 핵 위기 때인 지난 1994년에 전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만들어 냈고, 2011년에는 전직 국가수반 모임인 ‘엘더스’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90세인 카터 전 대통령은 최근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