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중동 등 전세계 16개 나라에 약 5만 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근로조건은 한국의 한 민간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노예노동'으로 표현할 정도로 극히 열악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상황입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을 당국에 상납하고 있다는 겁니다. `VOA'는 최근 중동 카타르를 방문해 현지에서 일하는 3천여 북한 노동자들의 현황과 실태를 직접 살펴봤습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전해 드릴 `VOA'의 현지 기획보도,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과로와 상납으로 얼룩진 노동착취 현장을 조명합니다. 조은정 기자가 도하에서 취재했습니다.
지난 10일 카타르 수도 도하.
알 코니쉬 해변가 주변으로 수 십 개 나라 외교공관과 초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이 화려한 국제도시 한 복판에서 호텔 건축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미 30층 뼈대는 거의 다 올라가 있습니다.
(기자) Is there Korean here?
(엔지니어) Korean here. They’re now up there working steel work. Reinforcement.
현장에서 만난 인도 출신 기술자는 건설 현장에 북한인들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약 1백 명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30층 꼭대기에서 철근 작업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다섯 시경 붉은 저녁 노을이 깔리면서 인도, 파키스탄, 네팔, 이집트, 시리아 출신의 근로자들이 퇴근을 시작합니다.
(기자) I want to meet Koreans.
(노동자들) 외국어
기자가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북한인들의 퇴근 시간이 "저녁 6시다, 8시다" 라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잠시 후 공사 현장 밖에 수 십 명의 일꾼들이 모이고, 이들이 기자를 옆 문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는 꼭대기에서 일하고 있던 한 북한인 노동자를 데려다 줍니다.
(기자) 조선에서 오셨죠?
(북한 노동자) 응.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50대로 보이는 건장한 북한 노동자는 기자를 자세히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성화에 마지못해 나왔지만, 기자의 질문에 침묵을 지킵니다. 다른 북한인들을 만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무심코 퇴근시간을 알려줍니다.
(기자) 몇 시에 퇴근하세요?
(북한 노동자) 열 시에.
카타르 현지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지에서 건설업을 하는 한국인 이모 씨의 말입니다.
[녹취: 건설업자 이모 씨] “그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근로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내지는 어떤 사람들은 주간근무를 하면 야간에 쉬게 되고 야간근무를 하면 주간에 쉬게 되는데 주간 야간을 다 일을 한다든지 일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근로시간을 일을 한다고 그런 점에서 대단하다, 놀랍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 걸 들었어요.”
도하 시내의 또 다른 건설 현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앞서 만난 노동자보다 체격이 왜소하고 안전조끼 속 옷차림도 허름합니다. 익명을 전제로 기자와 인터뷰에 응한 이 노동자는 하루에 12-13 시간을 일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북한 노동자] “까타르에는 정량이라는게 없는데 꼬리아 측에서 정량을 만들어서 일 시키는데 보통 12시간, 13시간 이케 된다 말이에요. 아침 5시에 나갔다가 저녁 열 시 돼야 들어오고.”
이 노동자는 한 달에 4번 매주 금요일에 쉰다고 밝혔습니다. 한 달 내내 중노동을 하고 받는 명목상의 월급은 미화 750 달러. 하지만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녹취: 북한 노동자] “원래는 회사에서 대상 물어서 하게 되면 2천 5백 리얄, 750 달러 하는데 거기서 이거 째고 저거 째고 하면 다 제하고 150 달러 밖에 안 준단 말입니다.”
이 노동자는 150 달러에서도 잡비, 저금 등 기타 경비를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100 달러, 카타르 돈 365 리얄 정도라면서, 3년 일하고 북한으로 돌아갈 때 미화 2천 달러 정도 모으면 잘 된 경우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카타르에는 3천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보도블록을 까는 등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 대외건설지도국 산하 수도건설, 건명건설, 남강건설, 젠코(Genco)에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남강건설은 전원 군인들이 나와 있습니다. 남강건설 소속 군인들은 월급을 따로 받지 않고, 3년 후 북한에 돌아가서 미화 3천 달러를 일괄적으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타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에이브 윤 씨는 지난 2006년 빌라를 지을 때 군인 출신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했었습니다.
[녹취: 에이브 윤 사장] "나올 때 군인들이었다고 그래요. 제대하기 전에. 한 1 년, 1 년 반 남겨놓고 자기들이 나왔다고 그렇게 얘기 하더라고요. "
또 다른 한인 건설업자 이종설 씨도 군인 출신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종설 사장] "우리 레이버 캠프에서 삼 백 미터 떨어진 데. 움 살랄 모하메드라는 지역이 있는데, 북한 사람들 캠프가 있었죠. 거기 있는 사람 다 군인이에요. 칠백 명 다 군인. 10 년 이상 군대 생활한 군인들이, 당성을 인정받은 군인들만 해외에 나올 수 있데요. 평양 도시 건설하는 아파트 짓고 하는 건설 노동자이죠."
북한 노동자들이 카타르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3년. 수도건설과 남강건설이 처음 진출했고, 2010년 젠코 (Genco)가 합류했습니다.
`VOA'와의 인터뷰에 응한 북한 노동자는 해외에 파견되기 위해 뇌물을 쓴 것도 없고 경쟁이 세지도 않다며, 자본금이 없는 사람들이 해외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노동자로서 해외에 파견되는 건 북한에서 일종의 특혜라는 일부의 시각과는 다른 설명입니다.
[녹취: 북한 노동자] “밑천이 없어서 나갔단 사람이 많았다 해요. 밑천이 없어서. 조국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밑천이 있어야 산다. 직업을 하제도 돈이 있어야 되고 아무거나 하제도 돈이 있어야 되니까니. 그래서 돈 때문에 다 재외에 나오지 뭐. 근데 재외에 나와서 실지 나와서 돈 번다는 건 없고…”
이 노동자는 다시는 해외에서 노동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당 간부가 돈을 착복해 자신의 수중에 돈이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취: 북한 노동자] “나요? 죽어도 안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 말이야. 재외는 제 돈 벌자고 나오디 지배인, 당 비서 돈 벌자고 나오는 건 없다. 솔직히 카타르 재외 건설 나오는 사람들은 다 지배인, 당 비서 돈 벌어준다 말이요.”
카타르의 건설 노동자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고 행색이 초라하다는 북한 노동자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남들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한 대가는 당국과 간부들에 가로채이고 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