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 병사 1 명이 15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에 망명하면서 북한 군의 군 기강 실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군 입대가 늘고 한국 영상물이 유입되면서 정권에 대한 군의 충성심과 결속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 군 관계자는 15일 한국에 망명한 북한 군 병사가 19세 하전사로 상습 구타 등 군대 현실에 불만을 품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군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에 망명한 것은 2000년 이후 8번째입니다.
지난 2002년에는 병사 1명이 소총을 들고 도라산역 인근을 통해 망명했고, 2008년에는 군관 (장교) 1명이 판문점 인근, 부사관 1명이 철원 인근을 통해 각각 군사분계선을 넘었습니다.
또 2010년에는 하전사 1명이 강원도 동부전선, 2012년에도 하전사 1명이 서부전선, 같은 해 10월 2일에는 중급병사가 동부전선을 통해, 6일에는 중급병사 1명이 상관 2명을 사살한 뒤 경의선 남북관리구역을 통해 한국에 망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상습 구타를 이유로 북한 병사가 한국에 망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지난 1979년 서부전선을 통해 한국에 망명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구타로 넘어온 것은 거의 최초가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 군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타가 거의 없는 군대로 유명했습니다. 나는 9년 간 군 복무를 했는데 때렸다는 사람도 못 봤고 맞았다는 사람도 못 봤고 저는 때려 본 적도 없고 맞아 본 적도 없었습니다.”
군대 안에 정치조직이 있어 구타가 발생하면 바로 보고 돼 처벌을 받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있었다는 겁니다.
또 당시에는 많은 군인들이 제대 후 노동당원이 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언행에 매우 신중했다고 안 소장은 설명했습니다.
안 소장은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북한 군 내 질서가 무너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정치조직이란 시스템은 남아 있지만 그 시스템이 견제를 못하는 거죠. 특히 후방 공급이 잘 되고 보급체계가 잘 서 있어서 먹을 것, 입을 것, 훈련 등 정규 생활이 보장돼야 하는데 지금 거의 노동자 직장처럼 변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힘센 사람이 힘 쓰게 되니까 구타가 계속 발생하는 거죠. 상하 간에 명령을 해도 날이 안 서니까 때려야 말을 듣는 환경에 온 거죠”
북한 군 정치장교 출신인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는 현재 북한 군의 기강이 과거와 매우 격차가 크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정훈 대표] “군기에서 벌써 차이가 있는 거에요. 우리 때는 군기가 빠진 군인들을 보기가 어려웠죠. 우리 때는 반복 동작과 기합 이런 것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 애들은 그 것을 시키면 탈영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군인들의 기강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며 몇 가지 핵심 요인들을 지적합니다.
한국 동아대학교의 강동완 교수는 이번 망명이 정부가 아닌 장마당에 의존해 성장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특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귀순 병사가10대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구타를 견딜 수 있는 정치적으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있다면 사실 견뎠겠죠. 지금까지 그런 구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구타 행위를 견딜 수 있는 군인의 내구력 자체가 약한 거죠.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그런 면에서 10대 병사가 넘어왔다는 것은 지금 한국 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의 새 세대들! 거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의 최정훈 대표는 북한 중상위층 가정에 한 자녀를 가진 가정이 크게 늘어난 것도 결속력이 약화된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정훈 대표] “우리 때는 자식을 4명 5 명 낳을 때니까 부모들이 군 복무에 오점을 남기지 말라고 계속 강조합니다. 힘들어도 견디라고. 지금은 남한처럼 북한도 한 명을 낳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식이 안 귀한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부대 나가서 힘들면 요령도 부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돌아오라. 때리거나 구타 등이 적용되면 두 말 말고 집으로 오라. 부모들이 그렇게 교육을 시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탈영을 통해 상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례가 늘고,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식량 문제로 탈영병이 중국으로 건너가 강도 행각을 벌이거나 현지 주민을 살해하는 사례들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 군대의 충성심과 결속력 약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외부 정보의 유입을 들었습니다.
최근 북한 군대의 남한 영상물 시청 실태에 대한 논문을 쓴 강동완 교수는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외부 매체가 끊임없이 북한 군대에서 확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이후 하달된 북한 군대 관련 내부 문건 6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급에 관계없이 남한 드라마 등 외부 매체를 접해 적발된 사례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겁니다.
논문에 따르면 보위부장 직속 부하, 인민무력부 소속 군인과 부관, 총참모부 지휘정보국 직속부대 등 다양한 부대와 계급의 군인들이 남한 영상물을 시청한 혐의로 적발돼 처벌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한 매체(TV조선)는 최근 입수한 북한 군 교육자료를 인용해 2013년 한 해 동안 한류문화를 접하다 적발된 건수가 1만 6천 건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KBS’ 방송은 지난해 12월 입수한 북한 군 문건을 통해 인민무력부 직속 장교가 한국 영화와 연속극을 무더기로 보관하다 적발됐고, 한 부대에서만 불순 내용이 담긴 CD와 DVD 수 백 개를 압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강동완 교수는 북한체제 유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대에서 이런 사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북한 당국의 군대 내 통제와 장악력이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강동완 교수] “북한을 선군정치라 볼 때 정말 군기가 잡혀있는 게 아니고 내부 문건을 보면 군 기강이 너무너무 심각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 이번 구타해서 넘어올 수 있는 것은 가능할 것 같고요. 체제와 사상에 대한 충성도가 약하니까 과거와 같이 정말 구타를 견디고 국가에 충성하고 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런 사상적인 기제는 작동을 안 한다고 볼 수 있죠.”
문건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 역시 이를 심각하게 여기고 109 련합검열조 등 모든 단속 기관을 총동원해 한국 영상물 시청과 확산을 단속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대대적인 단속에도 외부 매체 시청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북한체제의 뼈대인 최고 지도자에 대한 인민군대의 충성도가 그만큼 낮아진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안찬일 소장은 최근 북한 군 수뇌부의 잦은 교체와 숙청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기류가 계속 확산되면 북한 군대가 체제 유지 수단이 아닌 체제 위협세력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군대는 마지막 충성의 보루인데 보루가 흔들리고 무력부장을 저렇게 자꾸 바꾸며 인사가 많은 것도 뭔가 먹는 문제, 후방 공급 문제 갖고 김정은과 충돌한다는 얘기거든요. 현영철의 예도 그렇구요. 군을 위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이렇게 계속 숙청하면 군대가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고 결국 아래로 내려가면서 와해되면서 큰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VOA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