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혔던 ‘이쾌대’. 하지만 지난 1953년 월북하면서 대중에게 잊혔는데요, 북한에서도 그의 친형 이여성이 김일성 주석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숙청되면서 공개적으로 거론이 금지됐습니다. 이 비운의 화가 이쾌대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 현장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세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쾌대의 대규모 회고전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녹취: 현장음]
백남준과 함께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이쾌대 작가는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는데요, 6.25 한국전쟁 이후 1953년에 월북을 했기 때문에 이쾌대라는 이름 석자는 사람들에게서 잊혔습니다. 이쾌대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이 작가는 지난 1988년 해금이 된 이후에야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잊혔던 화가를 오늘날 다시 주목하는 건, 그의 그림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있고 민족과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데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녹취: 김예진, 학예연구사] ”이번 전시는 광복 70년을 맞이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준비한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라고 하는 전시입니다. 이쾌대 화가는 한국 근대화단에서 굉장히 주목 받는 화가 중에 한 명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입니다. 해방 이후에 그린 ‘군상’이라든가,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과 같은 몇몇 작품들은 한국 근대화단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주목 받아 왔지만, 나머지 작품들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가 되거나, 많은 조명을 받지 않았었는데요.”
1913년 경북 칠곡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쾌대는 서울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갓 결혼한 아내 유갑봉과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습니다. 이번 회고전의 첫 부분인 ‘사랑을 그리다’가 이 시긴데요, 이쾌대는 유학기간 동안 자신의 아내를 수없이 그렸습니다.
[녹취: 김예진, 학예연구사] “이쾌대는 학창시절부터 인물화에 굉장히 뛰어났던 화가인데요, 그 인물화를 숙련시키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부인의 초상화를 굉장히 많이 그립니다.”
두 번째 부분인 '전통을 탐구하다‘에서는 점차 과감한 색면 처리와 밝은 색채, 검은 필선 등 새로운 시도를 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녹취: 김예진, 학예연구사] “1941년 신미술가협회라고 하는 순수미술 동호회를 결성하고, 해방 직전 1944년까지 약 4년 동안 활동했었던 신미술가협회 시절에는 굉장히 맑고 명랑한 색채, 그리고 굉장히 서정적인 주제들을 그림으로 그렸던 시기인데요, 이쾌대의 예술활동 시기 중에서 가장 이쾌대가 아무런 고민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주제를 다루었던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마지막, ‘시대를 끌어안다’는 1945년부터 월북하기 전까지의 작품들을 담고 있습니다.
[녹취: 김예진, 학예연구사] “그 해방 이후에 한국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한다든가 혹은 굉장히 지쳐있고, 어떤 파국의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갈등에 의해서 굉장히 혼란에 빠져있는, 그 한국의 대중들에게 힘을 불러일으켜서 이들을 일으켜 세워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굉장히 애썼던 화가입니다.”
1953년 남북한 포로 교환 때 북한을 택한 이쾌대는 북한으로 건너간 뒤에도 화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61년 국가미술전람회에 ‘송아지’를 출품한 것을 끝으로 이후의 행적이 전하지 않는데요.
[녹취: 김예진, 학예연구사] “월북한 이후에 한 동안은 북한의 대표적인 미술가로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데요, 조선미술가동맹이라고 하는 단체의 회원으로서 뭐 여러 차례 국가전람회에서 상도 받고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쾌대가 61년 이후에 그 행적이 묘연해진 이유 중에 하나로는 1958년 경에 이쾌대의 형인 이여성 씨가 김일성 중심의 북한 공산주의에 반대를 하면서 종파론자로 숙청이 되거든요.”
남북한 양쪽에서 금기 화가로 낙인찍히고, 한때 역사에서도 지워졌던 화가 이쾌대를 다룬 이번 전시는 반세기 동안의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쾌대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관람객들이 많은데요,
[녹취: 관람객] “화가가 있는지는 몰랐었어요, 근데 앞에서 보고 아, 이 분이 어떤 시대에 이렇게 살았었고, 그래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구나…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모르고 왔거든요, 그런데 그림을 더 봐야 될 거 같긴 한데, 부인 그림을 되게 많이 그렸다라고 아까 작가 소개에 나와있더라고요, 이런 계기를 통해서 이 분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렇게 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고.”
전시를 본 관객들은 그의 과거 행적보다는 그의 작품 자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녹취: 관람객] “ 이쾌대의 군상이라는 그림은 한국미술사에 있어서 또 유례가 없는 걸작이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쾌대 전시가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것 같아서 제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붓칠이 되게 과감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도 다 색깔이 잘 표현돼 있고, 그래서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인물 그린 그림들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인물의 표정에서 작가의 어떤 마음 같은 게 잘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한국적 서양화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쾌대 작가. 월북화가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새롭게 조명하고자 마련된 이번 전시는 11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립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