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투데이 풍경'입니다. 한반도의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석에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시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요. 한 해 수확한 것을 놓고 가족과 조상 앞에서 고마움을 나누는 명절인데요. 미국 내 탈북자들은 어떤 추석을 보냈을까요? 장양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효과 : Thanks Giving 영화 ‘Funny People중 ] thank God..
지금 들으시는 내용은 미국의 추석인 추수감사절을 배경으로 한 2009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 ‘퍼니 피플’ 의 한 장면입니다.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오랜 만에 한 식탁에서 칠면조 요리를 해 놓고 한 해 감사함을 나누며 즐거운 명절 만찬을 즐깁니다.
한국 국민들은 추석을 맞아 조상님께 성묘하고 가족과 떡을 떼는가 하면 명절 연휴를 맞아 줄줄이 나온 한국영화를 관람하느라 극장가는 북새통을 이룹니다.
미국 내 한인들도 고국의 명절 추석을 쇠느라 송편 등 전통음식을 나누며 쇠는 모습을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추석 풍경은 개인의 배경과 사정에 따라 달랐습니다
엄마와 언니와 함께 난민자격으로 8년 전 미국에 입국한 20대 탈북 여성 조은혜 씨에게 이번 추석은 어느 해 보다 감사한 느낌입니다.
미국 중부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본부를 둔 탈북자지원단체 에녹의 도움을 받아 수년 간 시간제 일을 하며 영어공부에 전념한 끝에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기 때문입니다.
[녹취: 조은혜]” 새로운 환경에서 나이또래 친구들이랑 공부하고, 1년동안 선생님들도 만나고 1대1 프로그램 통해서도 감사했었고 5월에는 몇 년 동안 공부한 야간 고등학교 졸업장 받았고 감격스러운 순간도 있었고요”
미 동부 버지니아에 본부를 둔 대북인권단체 NKUSA 의 조진혜 대표를 언니로 둔 덕에 북한인권관련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조 씨는 젊은 한인 지도자 단체의 초청으로 뉴욕에서 연설하고 미국인 교회에서는 영어로 간증하는 바쁜 주말을 보냈습니다.
한편 조 씨는 미국에서 살기 전 18년동안 중국에서 방랑자처럼 산 탓에 추석 명절이 와 닿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녹취: 조은혜] “새해나 명절이 와도 명절이다라는 기분으로 쇠 본적이 없어요 추석 명절에 대한 걸 한국 분들을 통해 들었어요. 인사도 드리고 했는데 추석을 명절로 쇠는 문화적인 삶으로는 접어들지 못했고요.”
조 씨는 올 추석은 그 동안 뜸했던 지인들과 안부를 물으며 명절 쇠는 기분을 대신했다며 그 것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는 북한 사람들도 추석에 성묘를 하지만 성묘 풍경은 밝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5-60세만 되도 노환으로 세상을 뜨거나 굶주려 돌아가시는 터라 조상들을 찾는 마음이 우울하다는 것입니다.
조 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북한에 묻혀 계시다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꽃도 꽂아드리고 성묘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1988년에 탈북해 지난 2006년에 미국에 입국한 30대 탈북남성 브라이언 김 씨는 올해 사업을 시작한지 2년이 됐습니다.
미중동부 켄터키 주 루이빌 시에서 10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식 식당을 운영하는 김 씨는 올 추석을 한인단체가 여는 골프대회에 참가하고 지역 한인교회에서 보냈다고 하는데요, 누가 들어도 그저 평범한 사업가로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김 씨는 한인들과 송편을 나눠 먹었다는데요 어렸을 때 탈북해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흐릿 하지만 친지들의 안부를 궁금해 했습니다.
[녹취: 브라이언 김 ] "추석때 산소 가잖아요?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긴 해요. 거기 남아 계시는 사춘들, 친구들, 동네 분들, 추석인데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시는지, 일단 건강하세요. 올 겨울 잘 보내시고, 추운데.."
켄터키 주 루이빌에 거주하는 40대 탈북 여성 에스더 한씨는 어느 때보다 힘겨운 추석을 보냈습니다. 추석 날 밤 10시가 다 돼서야 퇴근해 한 숨을 돌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남편과 미국으로 이주한 지 3년 째인 한 씨는 추석이라는 지인의 연락에 잠시 고향 생각에 잠깁니다.
[녹취: 에스더 한] “고향생각 안 난다면..당연히 많이 나죠. 오늘은 고향에서 이제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갔겠나..”
그러나 무엇보다 한 씨의 가슴을 쥐게 하는 것은 북에 홀로 남겨진 아들입니다.
올 해 벌써 15살인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한 씨는 아들 생각에 하루 종일 힘들었다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녹취: 에스더 한] “아들 생각도 나고 하니까... 그 애가 걸리는 게 제일..연락이 소식을 모르니까.. 지금은 가을이니까… 옥수수도 있을 거고…그런 거 뜯어 먹으면서..."
한 씨는 추석 보름달을 보면서 아들을 꼭 만나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소원으로 비는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은 가족과 고향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에 한숨을 내 쉬면서도 희망의 끈만은 늘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