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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배, 비망록 출간..."고통 속 북한주민 잊혀지지 않기를"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최근 비망록 ‘Not Forgotten’ 을 출간했다. (자료사진)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최근 비망록 ‘Not Forgotten’ 을 출간했다. (자료사진)

지난 2012년 11월 북한 당국에 체포됐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2년 간의 억류 생활을 회고하는 비망록을 출간했습니다. 민감한 내용이 담긴 컴퓨터 외장하드를 소장했다는 이유로 북한 나선시에서 체포돼 일방적 조사와 재판을 받은 뒤 노동수용소에 수감되는 과정과 석방 당시의 정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배 씨의 비망록을 백성원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케네스 배 씨가 북한에서 석방된 지 1년 반 만에 북한 억류의 전모를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3일 출간된 비망록의 제목은 ‘Not Forgotten,’ 극단적 통제와 우상화 속에 갇힌 북한 주민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배 씨가 중국에서 벌인 선교활동과 사진들, 그리고 ‘인사이드 노스코리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등이 저장된 컴퓨터 외장하드를 북한에 반입한 건 의도한 바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북한 접경지역으로 향하는 기차 여행 시간 동안 외장하드 자료를 새로 산 컴퓨터에 모두 옮기려던 당초의 계획을 까맣게 잊은 채 그대로 북한 국경을 통과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겁니다.

하지만 북한 조사관들은 배 씨가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중앙정보국(CNN)의 사주 하에 북한 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이른바 “제리코 작전”을 수행했다는 결론을 미리 내린 채 거기에 맞춰 4개월 반에 걸쳐 예심절차를 끌고 나갔습니다.

조사 과정 중 구타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무릎을 콘크리트 바닥에 댄 채 상체는 꼿꼿이 세우는 고통스러운 자세를 강요 받았고 폭언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위협을 거듭 받았습니다.

배 씨는 조사관들의 지시와 각본에 따라 수 백장의 진술서와 사과문을 써야 했고, 전화와 편지를 통한 가족들과의 소통 역시 사전에 하달 받은 내용을 전달하는데 집중해야 했습니다.

나선시에서 평양으로 옮겨져 보위부 건물로 추정되는 곳에 수감돼 있는 동안 북한의 ‘광명성 3호’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이 이어졌고,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 몰린 북한 당국은 배 씨에 대한 극단적인 살해 위협도 서슴지 않습니다. 성난 북한 군중들이 미국인 범죄자를 칼로 찌르고 갈기갈기 찢을 것이며 누구도 이를 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장면입니다.

억류 5개월 만에 재판 날짜가 잡혀 변호사 선임 제안을 받았지만 사전 접견을 할 수 없다는 말에 배 씨는 변호사 선임을 포기했고, 북한에서 미국의 이익 대표부 역할을 하는 스웨덴 대사 역시 참관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한 형법 60조 국가전복 음모죄 등이 적용돼 노동 교화형 15년을 선고 받았지만, 북한 관리들은 배 씨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재판 결과나 형량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반응이라며 가족을 통해 미국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요청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배 씨는 이후 병원 입원을 거쳐 노동 수용소에 수감돼 농사일과 하수관 설치 공사 등 고된 육체 노동을 계속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북한 관리들은 배 씨가 사상 전향을 하게 되면 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며 주체사상 학습을 독촉했습니다.

회고록에는 북한 관리들이 전직 미국 대통령이나 장관급 인사의 방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특정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2009년 미국인 여기자 억류 당시를 거듭 예로 들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원한다는 속내를 계속 내비친 겁니다.

2013년 초가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리가 의사를 대동하고 배 씨를 극비리에 방문한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억류 미국인 귀환이 미국 정부의 최우선 순위라는 원칙만 확인한 채 간단한 건강 검진만 한 채 사라졌다는 설명입니다. 그들이 가족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배 씨의 사진을 찍어갔지만 결국 가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 백악관 제출용이었을 것이라는 게 배 씨의 추정입니다.

2013년 8월30일로 예정됐던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방북 초청을 북한 측이 전격 취소한 것과 관련해서는 킹 특사의 군용기 탑승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킹 특사가 일본에서 군용기를 타고 방북하려 하자 북한 당국이 크게 불쾌해 한데다 B-52 폭격기의 한반도 출격까지 겹쳐 석방 교섭 기회가 무산됐다는 겁니다.

수용소 수감 시절 식사 배급이 형편없었지만 배 씨 뿐아니라 간수 등 수용소 관리 모두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또 치통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적절한 처방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억류 마지막 날이기를 고대했지만 북한 관리는 배 씨의 환갑도 수용소에서 기념하게 될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북한 당국은 배 씨에게 미국 정부에 연락해 당시까지 밀린 13만 달러에 달하는 병원비와 숙박비 등을 받아 내라고 종용했습니다. 평양주재 스웨덴 외교 관리가 면회를 올 때마다 신문과 편지, 초콜릿 등을 놔두고 갔지만 간식은 언제나 간수들 차지였습니다.

북한 당국은 조선신보, CNN 등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특사의 방북을 요청한 배 씨는 수용소에 3번째 수감되면서 언젠가 석방된다면 자유를 위한 투사가 돼 거짓 체제로 일관된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겠다는 결심까지 했습니다.

배 씨가 마침내 석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확신한 건 2014년 11월7일. 북한 관리가 밤늦게 찾아와 다음날 인터뷰를 할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고 갔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짐까지 싸준 북한 관리들과 동행한 곳은 평양의 보통강 호텔로, 그 곳에서 의사를 포함한 미국인 일행 3명과 만나 건강 검진을 받은 뒤 오후 3시 고려호텔로 이동했습니다. 배 씨는 이어 2층 회의실로 인도돼 매우 화난 얼굴로 들어온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과 김원홍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이 배석한 가운데 특별 사면을 허가 받았습니다.

미국 대표단 일행에 공식 인계된 배 씨는 그 길로 미국에서 파견된 비행기에 올라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담당 보좌관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30만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비와 식대 등을 북한이 청구했을 것으로 우려했지만 그런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통보 받았습니다.

배 씨는 자신의 석방을 위해 힘을 기울여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북한 병원과 수용소에서 자신에게 연민을 보인 이들에게 직접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상황이 달라진다면 언젠가는 북한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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