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전설적 원주민 지도자 '크레이지 호스'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인디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지도자 크레이지 호스. 라코타 인디언 부족의 추장입니다. 크레이지 호스는 '미친 말'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사실 라코타 족 말의 진짜 뜻은 '길들이지 않은 말', 야생마입니다.
16세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건너오기 시작했을 때 북미주, 오늘날의 미국과 캐나다 일대에는 수십 개 부족 약 1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라코타, 또는 오글라라 수 족이라고도 불리는 인디언입니다.
크레이지 호스는 원주민의 삶의 터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백인들과 투쟁을 벌인 사람입니다. 특히 미국 역사에 전설적으로 남아 있는 리틀빅혼 (Little Big Horn) 전투에서 미국 기병대를 전멸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라코타 족에게 크레이지 호스는 전사이기도 하지만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인식되고 있습니다.
라코타 족은 미국의 중부 지방인 사우스다코타, 와이오밍, 네브래스카 등에서 주로 사냥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 동부에 살던 미국인들이 점차 새로운 땅을 찾아 서부로 이동했습니다.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들의 이동은 더욱 빨라졌습니다. 거기에다 1849년에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너도 나도 금을 캐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본래 이 땅에 살던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은 백인들과 크게 달랐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있었고 때로는 폭력으로 번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상황이 불안한 곳에 군대를 보내 백인 정착민들을 보호하고 인디언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가서 살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이를 거부하면서 백인들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1868년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과 포트래러미조약(Fort Laramie Treaty)이라는 걸 체결합니다. 이 조약은 라코타 인디언들에게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블랙 힐 일대를 소유지로 지정해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금광이 발견되고 백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군대가 백인 정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라코타 인디언을 압박하는데, 라코타 족은 24살의 크레이지 호스를 대장으로 추대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유명한 리틀빅혼 전투에서 크레이지 호스는 조지 커스터 대령의 기병대 병력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러나 결국 미국 정부가 대부분의 땅을 차지하게 되고 크레이지 호스와 그의 부족은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복하면 자유롭게 살게 해주겠다는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여 항복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질질 시간을 끌었고, 화가 난 크레이지 호스는 1877년 군 사령관에게 항의를 하러 네브라스카 주 포트 로빈슨 기지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다 경비병에게 체포돼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크레이지 호스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한 군인이 그를 대검으로 찔렀습니다. 존경 받던 라코타 인디언 추장은 결국 다음날인 9월 5일 숨지고 말았습니다.
라코타 인디언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라코타 인디언들은 1939년부터 선더헤드(Thunderhead)라는 바위산의 한 면을 깎아 170m가 넘는 거대한 크레이지 호스의 상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말을 타고 땅과 하늘이 맛 닿는 라코다 인디언의 땅을 가리키는 모습의 석상. 인디언들은 “우리 붉은 얼굴도 흰 얼굴 못지않게 자랑스런 영웅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