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현대인의 문화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라디오 방송 기술을 개발한 리 드 포리스트를 만나보시겠습니다.
현대인의 문화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라디오 방송 기술을 개발한 리 드 포리스트.
뉴스, 음악, 스포츠, 토론 등으로 미디어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고 있지만 역사 깊은 라디오 방송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선통신의 가장 초보적 기술은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코니는 1895년 인류 처음으로 무선 전파를 공중에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니의 발명이 그대로 라디오 방송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선통신 기술을 누가 개발했는가를 한 사람으로 지목해 말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인들을 포함한 여러 발명가들이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드 포리스트는 라디오 방송을 가능하게 한 기술자 중 중요한 인물입니다. 드 포리스트는 라디오 방송 기술 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으로 평가되는 진공관을 개발했습니다. 그가 개발한 진공관은 1947년에 트랜지스터라는 기기가 등장할 때까지 라디오 방송은 물론 모든 무선 통신, 전화, 레이더, 텔레비전, 그리고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새로운 통신의 시대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드 포리스트를 라디오의 아버지, 텔레비전의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드 포리스트는 노벨 물리학상의 강력한 후보로도 올랐을 정도입니다.
드 포리스트는 캘리포니아 주 할리우드에서 1873년 8월 26일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교회 목사였습니다. 드 포리스트는 어려서부터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불과 13살 때 축소판 기관차라든가 풍로식의 난로 등을 발명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목회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자신은 과학자가 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명문인 예일 대학교의 셰필드 과학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당시로써는 대학에서 고급 과학을 가르치는 데는 많지 않았습니다. 1899년에는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나중에 라디오로 통하는 통신기법의 이론이었고, 라디오 통신에 대한 미국 최초의 논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선 전신이 미국에 도입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새 말로 치면 전보를 치는 기술이 들어온 거죠. 그래서 엔지니어, 발명가들 사이에 무선 전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드 포리스트도 마르코니, 독일의 하인리치 루돌프 헤르츠 등이 개발한 전파의 송신 방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드 포리스트는 시카고에 있는 웨스턴 일렉트릭 컴패니의 전화부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헤르츠 전파를 수신하는 방식을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가 어느 정도 성공하자 그는 드 포리스트 무선 전신회사를 설립합니다. 즉 전보를 송수신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수신 장치 개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1906년 10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라디오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냈습니다. 훗날 오디온(Audion)이라 불린 삼극진공관(Triode)을 완성한 것입니다.
진공관은 필라멘트와 플레이트 그리고 그리드 세 전극이 진공 유리관에 둘러싸인 마치 전구와 같은 모양입니다. 전지에 연결을 하면 약한 라디오 신호도 잡을 수 있는 감도 높은 수신 장치입니다. 드 포리스트가 개발한 장치는 라디오 신호 수신뿐 아니라 수신된 라디오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라디오 신호를 발생시키는 오실레이터(Oscillator) 즉 발진기가 나오게 되죠. 드 포리스트는 단 하나의 발명으로 전화, 전신, 라디오가 겪고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드 포리스트는 1907년 뉴욕에서 말소리와 음악을 방송하는 첫 실험을 했습니다. 1910년에는 뉴욕에서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엔리코 카루소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생중계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잡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방송 실험은 실패했지만, 드 포리스트의 실험은 무선통신을 문자 전송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뉴스를 전달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912년에는 3극 진공관을 연이어 사용해 고주파 소리를 더욱 멀리 갈 수 있게 하는 증폭기를 개발했습니다. 이어 진공관에서 나오는 소리를 안테나 송신기 등에 연결해 라디오 신호를 송신, 수신, 증폭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시킵니다.
드 포리스트는 기술 개발은 뛰어났지만, 사업상으로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많은 것을 개발해낸 그였지만 때로는 사업이 망해서, 또 소송으로 때로는 특허권 문제 등으로 시달린 일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개발품을 헐값에 처분해 버린 일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원거리 송신에 필수적인 증폭 진공관 사용권을 아메리카 전화 전신회사, 즉 AT & T에 팔아버린 일이었습니다.
당시 AT&T는 전화망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었는데, 드 포리스트의 오디온 기술은 최고의 발명품이었습니다. 1912년 오디온의 신호 증폭 기능 시연이 성공하자 AT&T사는 그로부터 오디온 특허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습니다. AT&T 자회사 웨스턴 일렉트릭은 세계적인 오디온 생산 회사가 됐습니다.
미국에서 정식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20년 11월 2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KDKA 방송국에서였습니다. 첫 방송은 당시 대통령 선거 소식이었습니다. 공화당의 워런 하딩과 민주당의 제임스 콕스 후보가 경선을 벌였는데, 하딩 후보가 승리를 한 선거였습니다.
진공관 개발로 방송을 가능케 한 드 포리스트는 이외에도 여러가지 혁신적인 발명품들을 내놓았습니다. 1920년에는 영화 속의 소리의 녹음과 재생 방식, 고주파를 이용해 열을 투여하는 의료기기 등 여러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벨(Bell) 연구소에서 실시하는 군사용 연구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1950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라디오는 사라지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2015년 기준 미국의 상업 라디오 방송국 수는 약 1만천 개, 매일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는 전 국민의 54%에 달합니다. 라디오 방송은 오늘날도 미국 제3위의 강력한 미디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드 포리스트와 같은 선구자들이 개발한 라디오 방송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