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고릴라 연구의 선구자 다이앤 포시를 소개합니다.
아프리카 중부지역에서 멸종돼 가는 야생 고릴라를 연구 보존하는데 일생을 바친 다이앤 포씨는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 오랑우탄 연구의 '비루테 갈디카스'와 함께 ‘유인원 3대 여성 연구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마운틴 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다 끝내는 르완다의 밀림에서 누구에게인지도 모르게 살해당한 비극적인 여성이기도 합니다.
다이앤 포씨는1932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이앤은 어려서부터 동물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의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다이앤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캘리포니아에 있는 산호세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서는 동물과 관련이 별로 없는 ‘Occupational Therapy’, 즉 부상을 당하거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훈련과 치료를 해주는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작업치료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이앤은 학교를 졸업하고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코쎄어 장애어린이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다른 세계, 더 넓은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한테서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거기 사는 야생 동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다이앤은 이어 미국 동물학자 죠지 쉐일러가 쓴 고릴라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중부 아프리카 야생 산악 지대에 서식하는 고릴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Mountain Gorilla, 즉 산악 고릴라라는 건데, 원숭이류 중에서는 어떤 것보다 몸집이 큰 동물입니다.
다이앤 포씨는 책으로는 양이 안 차서 1963년 돈을 빌려 6주간 직접 아프리카를 여행했습니다. 다이앤은 현지의 유명한 인류학자 루이스와 매리 리키(Louis and Mary Leakey) 부부를 찾아갔습니다. 리키 교수 부부는 다이앤 포씨에게 마운틴 고릴라 연구가 인류 발달사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포씨는 멸종돼 가는 산악 고릴라를 연구해야겠다 결심을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다이앤은 르완다의 밀림 지대엘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야생 고릴라도 보게 됐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일단 미국에 돌아온 다음 본격적으로 고릴라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마침 ‘윌키기금(Wilkie Foundation)’이라는 곳에서 다이앤의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윌키기금은 그때 이미 침팬지를 연구하는 또 다른 여성 제인 구달(Jane Goodall)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당시 자이레에 연구 캠프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산을 잘 아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산악 고릴라들이 사는 데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지역은 1960년대 이후 종족간 전쟁이 치열했던 곳이었습니다. 후투 족과 투치 족 싸움으로 르완다, 자이레, 우간다 등 여러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소요로 인해 다이앤 포씨는 비교적 안전한 르완다의 야생동물 보호 구역에 ‘카리소크연구센터(Karisoke Research Center)’를 세웠습니다. 그 후 18년 동안 이곳은 다이앤 포씨의 터전이 됐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여러 해 동안 고릴라의 매일 매일 생활을 관찰하고 각 개체의 성격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과 친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릴라의 소리와 몸짓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고릴라 가족들과 함께 앉아 놀았습니다. 조심스러웠지만 다이앤은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보상은 고릴라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이앤은 고릴라의 모든 움직임을 기록했습니다. 고릴라들의 수, 먹는 것, 좋아하는 환경 등 모든 것을 조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산악 고릴라가 사나운 동물로 알고 있는데, 다이앤 포씨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고릴라는 순하고 영리한 동물이라는 겁니다. 고릴라가 공격적인 때는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뿐이라는 거죠.
유명한 교양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1970년 밥 캠벨이라는 사진기자를 카리소크 연구 센터로 보내 특집을 만들었습니다. 캠벨 기자는 피넛트라 명명된 숫고릴라가 다이앤 포씨의 손을 잡는 장면을 사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이야말로 야생 고릴라와 인간이 친근하게 접촉을 한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사진을 표지에 실었습니다. 이 사진과 기사로 다이앤 포씨의 연구활동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그런 가운데도 공부를 계속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즉 1970년 아프리카를 떠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들어가 동물학을 전공해 박사가 됐죠.
다이앤 포씨는 그 뒤 르완다 기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고릴라가 사냥꾼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돼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돈 때문에 고릴라를 죽였습니다. 고릴라의 머리, 손, 발 등은 꽤 많은 돈에 팔렸습니다. 고릴라를 끓여 먹으면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다는 일종의 미신도 한몫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팔기 위해 고릴라를 잡는데, 고릴라 가족은 격렬히 저항을 합니다. 그럴 때는 저항하는 고릴라를 죽이고 살아 있는 고릴라를 잡아가는 거죠. 이렇게 고릴라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이앤 포씨가 특별히 사랑했던 고릴라도 살해됐습니다. 그 고릴라는 디지트로 불리웠는데, 손가락이 몇 개 없어 다이앤이 그렇게 이름을 지어 준 어린 고릴라였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디지트를 처음 만났을 때 친구도 없고 외로워 보이는, 순하고 호기심 많은 고릴라였다고 말했습니다. 다이앤이 숲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디지트는 그 옆에 기대어 잠을 자는 등 여러 해 동안 다정하게 지내던 고릴라였습니다. 그런 친구도 무참히 살해된 거죠. 발견된 디지트의 유해는 연구 센터 부근에 있는 특별한 장소에 묻혔습니다. 그 후 다이앤 포씨는 고릴라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디지트 기금’이라 불리는 산악 고릴라 보호를 위한 국제적 지원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고릴라 살해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동물 서식지에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르완다 관리들의 계획에도 반대했습니다. 산악 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한 소규모 경비대까지 조직해 고릴라 포획용 덫을 찾아 제거했습니다.
다이앤은 사냥꾼들로부터 격렬한 비난과 방해를 받았습니다. 르완다 관리들까지 다이앤 포씨가 자신의 소유도 아닌 지역을 좌지우지한다며 보호운동을 방해했습니다. 이들은 다이앤 포씨가 과연 과학자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했습니다.
1980년 다이앤 포씨는 캠프를 떠나 뉴욕 주 코넬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고릴라와의 생활을 기록한 책을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1983년 “안개 속의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당시 세계에는 산악 고릴라가 겨우 200마리 정도밖에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많은 강연과 보호운동을 벌이고 다시 르완다로 돌아왔습니다.
1985년 12월 26일, 다이앤 포씨는 자신의 캠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연구소는 난장판이 돼 있었고 얼굴을 밀림용 칼로 난자당한 채 숨져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다이앤 포씨의 살해 사건은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력한 고릴라 보호 운동에 반대하는 자들의 소행일 거리고 추축을 하기도 합니다. 연구 자료를 탐내서 그런 거라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며칠 후 다이앤 포씨는 자신이 사랑하던 고릴라의 유해 부근에 묻혔습니다.
다이앤 포씨가 살해된 지 3년 후 미국의 영화사 와너 브러더스는 는 그녀가 쓴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이앤 포씨의 고릴라 보호 운동과 슬픈 그녀의 마지막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이앤 포씨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자신의 연구를 고릴라와 그 환경을 보호하는 데 바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이 없었던들 산악 고릴라는 멸종됐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다이앤 포씨 고릴라 국제기금’은 지금도 활발한 고릴라 보호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