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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육아 혁명' 불러온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


벤저민 스코프 소아과 의사와 손녀 수잔나.
벤저민 스코프 소아과 의사와 손녀 수잔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육아의 혁명을 불러온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육아의 혁명을 불러온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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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스포크는 세계에 육아의 혁명을 불러온 소아과 의사입니다. 스포크 박사의 육아지침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 부모들은 주로 존 비 왓슨의 ‘신생아와 어린이를 위한 심리적 육아법’이라는 책을 참고로 아기를 키웠습니다. 그의 이론은 아기의 본능적인 느낌을 거부하는 양육을 하라는 것, 즉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젖을 먹이는 것도 정해진 시간에만 먹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기들은 조르기 잘하는 아이들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들은 아이에게 뽀뽀하거나 안아 주거나 몸을 만져 주며 달래도 안 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벤저민 스포크는 1946년에 ‘아기와 육아에 대한 상식(The Common Sense Book of Baby and Child Care)’이라는 책을 펴내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스포크 박사는 부모들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본능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기들이 울 때나 배고플 때 또는 피곤할 때 부모들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기한테서 나타나는 현상에 따라 결정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시간제 수유법은 맞지 않다, 아기들이 배고플 때 그냥 먹여라, 아기들은 자신이 언제, 얼마나 먹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파서 울 때마다 젖을 준다고 해서 더 졸라대는 아이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또한 아기들을 껴안아주거나 뽀뽀해 주라, 그렇게 예뻐해 주면 아기들은 더 좋아하고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스포크 박사는 저명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 결과를 공부해 거기에 바탕을 두고 육아법을 제시했습니다. 1946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언론계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으나 곧 인기가 폭발해 1년에 75만
부나 팔렸습니다. 전국의 어머니들로부터 스포크 박사에게 많은 감사 편지도 쏟아졌습니다.

스포크 박사의 어머니 밀드레드 스포크 여사는 매우 엄한 분이었습니다. 스포크 박사는 어머니가 자기와 형제자매들을 기를 때 어떤 식으로 했던 가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것을 정리한 것이 바로 육아이론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벤저민 스포크 박사는 1903년 미국 동북부 지방인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서 6남매의 첫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변호사였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중고등학교는 재력이 있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들어가는 사립학교 필립스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대학은 명문 예일대학에 다녔습니다.

벤저민 스포크는 예일대학에 다닐 때 3년 여름을 장애 어린이 캠프에서 일했습니다. 본인은 그 경험 때문에 의과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일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뉴욕시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졸업반 성적은 일등이었습니다.

소아과 의사가 된 스포크 박사는 1933년에 뉴욕 시에서 개업을 하고 신생아와 어린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업 후 10년 동안 스포크 박사는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들에 대해 말하는 사실들이 기존의 이론에 맞는지 짜 맞추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3년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부모들에게 줄 도움말을 책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2차대전 중으로, 스포크 박사도 해군에서 복무하던 중이었습니다. 스포크 박사는 복무기간 2년 동안 밤을 새워 책을 썼습니다.

책이 성공을 거두자 1950년대에 닥터 스포크 박사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다른 책도 쓰고, 여러 잡지에도 기고를 했습니다.TV 출연요청도 쇄도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벤저민 스포크 소아과 의사(왼쪽)가 1960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대화하고 있다.
벤저민 스포크 소아과 의사(왼쪽)가 1960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대화하고 있다.

스포크 박사는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에도 뛰어들었습니다. 1960년대에 존 F.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운동을 했을 때는 케네디 당시 후보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함께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스포크 박사는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그룹에도 가담했고 월남전 반대 데모에도 참가했습니다.

1968년에는 미군 입대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항소를 해서 무죄가 됐지만 법적 투쟁 때문에 돈이 무척 많이 들어갔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은 월남전, 민권운동, 히피 문화 등이 뒤얽힌 혼란기였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체제에 반항하는 물결이 일었고 병역을 기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같은 현상이 스포크의 육아법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한 지도적인 종교적 사상가는 스포크를 “방종의 아버지”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1972년에는 군소정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했으나 낙선했습니다.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스포크 박사는 자신의 저서를 계속 개정해 나갔습니다.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가 변하기 때문에 스포크 박사도 개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2004년에는 제8판이 출판됐습니다. 여기에는 영양, 신체장애와 행태에 대한 최신 의학 소식이 들어있습니다. 이 책에는 또한 직업을 가진 어머니들, 탁아소, 외짝 부모, 동성 부부의 양육 등 사회적으로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 등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스포크 박사의 “아기와 육아에 대한 상식”은 출판된 이래 5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39개 언어로도 번역이 돼 세계적인 육아 지침서가 됐습니다.

벤저민 스포크 박사는 1998년에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많은 학설이나 육아서가 나왔지만 스포크 박사의 조언들은 여전히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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