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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처음으로 지구를 선회한 미국 우주인, 존 글렌


지난 2012년 존 글렌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우주 비행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12년 존 글렌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우주 비행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존 글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 존 글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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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구를 선회하고 돌아온 우주인 존 글렌은 뛰어난 조종사로, 최초의 우주인으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글렌은 어려서부터 과학, 특히 항공과학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애국심이 매우 강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존 글렌은 1921년 7월 18일 미국 중부 지방인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글렌은 193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스킹엄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글렌은 일본에 보복해야 한다며 대학을 그만두고 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해군 항공사관학교 후보생 과정에 들어가 조종사 훈련을 받은 그는 1년간 훈련을 마치고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바로 태평양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존 글렌은 남태평양 기지에서 모두 59차례 출격해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1952년에는 한국 배치 명령을 받고 1953년 2월부터 전투기 조종사로 싸웠습니다. 한국의 공중전에서는 소련의 미그기를 격추해 유명해졌습니다. 1953년 7월 12일 글렌은 MIG-15 전투기를 처음으로 격추했습니다. 이어 7월 19일에 또 한 대, 7월 22일에도 또 한 대를 격추했습니다. 4번의 공중전에서 3대의 미그기를 격추한 것입니다.

한국전쟁에서 그는 2개의 항공수훈십자훈장과 8개의 항공수훈장을 받았습니다. 글렌은 한국 전쟁을 끝으로 전투기 조종사 복무를 끝냈지만 1954년에 다시 미 해군 시험비행조종학교에 들어가 테스트 파일럿 훈련을 받았습니다. \

존 글렌.
존 글렌.

미 항공우주국(NASA)은 1959년 글렌을 미국의 머큐리 우주 계획에 발탁했습니다. 머큐리 계획의 우주인은 글렌을 포함해 7명의 팀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1962년 2월 20일, 존 글렌은 역사적인 우주 비행에 나섰습니다. 이미 두 명의 우주인이 짧은 탄도 비행을 하고 동물을 이용한 위성 발사에 성공해 모든 것이 준비됐지만 여전히 긴장되고 불안한 비행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주 케이프 캐너배럴에서 글렌이 탄 우주선 우정 7호(Friendship 7)는 강력한 로켓에 실려 발사됐습니다. 글렌은 차질 없이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지구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건 비행이었지만 글렌은 침착하게 지상의 사령부와 교신을 계속하며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글렌은 거의 5시간에 걸쳐 지구를 세 바퀴 돈 다음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글렌은 미국 우주 비행 사상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돌고 귀환한 우주인이 됐습니다.

당시 소련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우주에서 미국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니라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를 선회하고 온 터라 미국은 충격에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런 때 우주 비행에 성공한 글렌은 미국의 영웅이었습니다. 미국 우주 개척사상 기공식과 같은 비행이 끝나자 전국 여러 곳에서는 글렌을 환영하는 퍼레이드가 벌어졌습니다. 각종 훈장과 표창도 쏟아졌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항공우주국 나사의 명예 서비스 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지난 1982년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인 존 글렌과 부인 애니 글렌이 휴스턴의 한 기부행사에서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1982년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인 존 글렌과 부인 애니 글렌이 휴스턴의 한 기부행사에서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를 계기로 존 글렌은 케네디 대통령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돈독히 하게 됐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글렌에게 공직에서 봉사해볼 것을 권고했습니다. 글렌은 1974년 오하이오주에서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4차례 연임을 했습니다.

글렌 의원은 정부 위원회, 외교위원회, 군사위원회, 고령자 특별 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했습니다. 1978년에는 무기확산금지법안을 입안했고, 우주 탐사, 과학, 교육 등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존 글렌은 77세 때인 1998년 10월 29일, 또다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상 최고령 비행기록이었습니다. 9일 동안의 비행은 사람의 나이가 우주 여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존 글렌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일생 동안의 경험, 교육 등 많은 자산을 갖고 있는데 그런 것을 그냥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스커버리 호 비행 다음 해인 1999년 존 글렌은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것으로 그의 공직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존 글렌 내외는 부부금슬이 좋은 것으로도 소문난 부부였습니다. 부인 애니 글렌은 오하이오주에서 살 때 함께 놀던 소꿉친구였습니다. 글렌은 자서전에서 ‘애니는 내 추억이 시작되는 때부터 내 일생의 한 부분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 사랑이 극진했습니다. 이들은 1943년 4월 6일, 뉴콩코드에 있는 칼리지드라이브장로교회에서 결혼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대학 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존글렌공공정책대학’을 설립한 것도 한 예입니다. 존 글렌은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우주 개발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미국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존 글렌은 2012년 바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인 대통령 자유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미국 최초의 우주계획 비행 팀 중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존 글렌은 2016년 12월 8일 95세를 일기로 고향인 오하이오에서 타계했습니다. 전설적인 우주인이자 상원의원 존 글렌은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습니다. 국립묘지 안장일은 2017년 4월 6일, 이날은 부인 애니 여사와의 결혼 74주년 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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