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에 주력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너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북한 주민은 날마다 전쟁 같은 삶을 사는데 한국 정부가 평화만 외치는 것은 전적으로 비정하고 이기적인 접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한국은 침묵하지 않는 투쟁을 통해 오늘의 발전을 이뤘는데,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북한 인권에 관해 국민을 침묵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다음 날이었던 지난 13일 미국 하원 건물.
[녹취: 앤드루 카드 전 백악관 비서실장] “My name is Andy Card…”
미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이사장인 앤드루 카드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사회로 2018 민주주의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한국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을 적극 펼친 4개 단체.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등 여러 의회 지도자들과 미 정부 관리들이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대거 참석했지만, 정작 수상자들의 조국인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외교관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자국민이 최대 동맹인 미국의 의회에서 큰 상을 받는데 초대받은 한국 외교관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날 민주주의상을 공동 수상한 이영환 한국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VOA에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그 많은 (대사관의) 인원 중에 단 한 사람도 올 사람이 없었을까? 기대는 사실 안 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탈북민들, 중요한 자국민 단체들이 상을 받으니까 한두 사람이라도 올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는데 저도 참 뜻밖이었어요.”
과거 북한과 관계 개선을 중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국제사회에서 이런 북한 인권 행사를 하면 항상 현지 대사관 관계자들이 와서 인사를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란 겁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정통 외교관이 주미대사였다면 분명히 누군가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외교관 출신 대사는 대통령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돼 있고.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본인이 굳이 사람을 보낼 의지가 있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밑의 공사나 참사관들도 여기에 간다고 해서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니 말도 못 꺼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를 중시하고 있어 북한 정권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인권 문제는 공개적으로 거의 제기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인권에 침묵뿐 아니라 일부 대북 인권단체들을 탄압까지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에 기반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소는 재정 이유로 최근 폐쇄됐고 민간단체들의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은 경찰의 검열과 제지가 늘고 있다고 단체 관계자들은 토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북 인권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형편. 관련 국제행사들도 열리지 못하고 많은 기업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단체들에 기부하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는 게 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USB(메모리막대기) 등에 외부 정보를 담아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활동을 하는 정광일 ‘노체인’ 대표는 과거 김밥까지 사주며 친절했던 한국 경찰이 최근에는 USB 안의 내용까지 검열했다며 북한에 다시 온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광일 대표] “우리가 보내는 게 뭡니까? 김정남은 왜 암살됐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한 연설 내용, 여러 가지 많은데 그게 무슨 큰 문제 될 게 뭐 있나요?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김정은이 자기 형을 죽인 것도 사실이고. 그것도 KBS가 만든 것이고. 우리가 검열을 당했는데 아마도 29일에 보낼 때 또 경찰이 (검열) 할 것 같아요. 참 당혹스럽습니다. 도대체 다시 북한에 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북한에 사는가? 가는 데마다 경찰이 따라다니고 하니까.”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북한에 현대사회의 어떤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북한에 자행되고 있다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었습니다. 한국 국회는 지난 2016년 이에 근거해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지만, 북한 정권이 오히려 강하게 반발하고 한국 정부는 침묵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최근 대남 선전매체들을 통해 북한인권법 폐지까지 촉구했는데, 한국 통일부의 백태현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반박 대신 “특별히 언급할 사항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백태현 대변인] “북한 선전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할 사항은 없습니다.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 정신에 따라 상호 존중과 배려의 입장 하에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이런 한국 정부의 태도에 큰 실망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VOA에 “한국 정부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며 이런 정체성을 감추면서 평화를 절대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헨 전 부차관보] “South Koreans can never walk away from their own identity and their identity is democratic system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They’ve worked very hard for this. It is who they are. They cannot achieve peace by hiding from who they are…”
한국의 정체성은 민주주의 체제와 인권 보호이고 한국인들은 이를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평화와 인권 증진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한국 정부와 미국, 국제사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국민이 존중을 받고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며 인권 개선이 이뤄질 때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올리비아 이노스 연구원도 VOA에 북한 인권에 관한 한국 정부의 최근 동향을 분명히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노스 연구원] “It’s definitely concerning. I think Moon Jae-in is often refer to as like a human rights lawyer but I thinks that his work actually with more related to the democracy movement in South Korea…”
이노스 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주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언급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 내 민주화 운동과 더 연관돼 있다며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그리 놀랍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했으니 주변 나라의 인권 개선에도 관여하길 바라는 것은 서방 세계의 관점에서 본 비전으로 한국과 미얀마 등 아시아에서는 이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노스 연구원은 그러나 한국이 북한 주민과 통일하려면 한국 국민과 정부 모두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재단의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전략기획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역사적 실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글래드스타인 실장] “It is a historic mistake for the Moon administration to ignore human rights of the North Korean people”
자신들은 경제적 번영과 민주화를 누리면서 이웃의 북한인들에게는 제대로 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인권 개선을 위한 지원도 하지 않는 것은 비극이란 겁니다.
글래드스타인 실장은 북한의 김 씨 왕국과 폭력을 분리할 수 없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평화를 주장하고 있다며, 이는 완전히 비정하고 편협하며 이기적 행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글래드스타인 실장] “The Moon administration is heartless for not carrying about 25 million people who live in North Korea. Completely heartless! And I would add small, they are being small and small minded and they are being selfish”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인구 모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한 것이지 북한의 2천 500만 명은 매일 전쟁처럼 살고 있는데 한국의 5천만 명은 평화롭게 산다면 이는 전시 상황이지 평화가 아니란 겁니다.
글래드스타인 실장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옛 독일 나치 정권의 강제수용소와 같은 반인도적 상황에 비유했음을 강조했습니다. 북한인들은 날마다 정부의 심리적 선전·선동 방송을 들으며 정부에 반대하면 구타를 당하고 고문당하며 인권 유린의 집합체인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전시상황 속에 살고 있는데 그저 침묵하는 게 평화가 아니란 겁니다.
글래드스타인 실장은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끌어안는 것은 마치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살해한 히틀러를 초청해 그렇게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의 인권 단체들은 과거 한국 정부는 선의로 이인모 등 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모두 돌려보냈지만, 북한으로부터 납북자 1명 돌려받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지금도 청와대는 판문점 선언을 강조하며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을 중지했지만,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거의 매일같이 6면에서 한국의 보수세력 궤멸을 주장하며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는 지난 14일 서울의 한 토론회에서 “북한이 개혁 개방하고 경제가 나아져 그 결과로 인권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 인권문제를 전제 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이영환 대표는 그러나 문 특보 등 현 정부가 주장하는 가치는 한국의 민주주의 가치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어떤 나라가 인권에 대한 비판 없이 인권을 스스로 개선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는데 그런 게 된다고 생각하는 게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 발전을 이뤘는데요. 침묵을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했습니다. 북한에서 진짜 이뤄져야 할 번영과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은 침묵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는 북한이 침묵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를 지금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게 하는 구조로 하고 있으니까”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 핵무기에 대응한 한국의 비대칭 무기는 바로 자유와 민주, 인권, 법치의 가치라며 국민이 주장하면 정부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국가의 정체성으로 북한과 협상해야 북한 정부도 순응하고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