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간 북한 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 입니다. 미국에 난민으로 입국한 탈북자가 미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채용됐습니다. 탈북 난민으로는 첫 사례입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11년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30대 남성 조성우 씨. 켄터키 주에 정착한 조 씨는 미국 입국 3개월 만에 단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미 동북부 버지니아주로 이사해 조지 워싱턴대학으로 편입했고, 대학생활 내내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어 보스턴의 사립대학인 터프츠대학원에서 1년 만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워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업가가 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겠다던 조 씨의 꿈은 경제학자로 바뀌었고, 목표를 향해 쉴새없이 달렸습니다.
조 씨는 지난해 8월, 꿈에 그리던 직장인 세계은행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세계은행에서 일하게 된 첫 탈북자인 조 씨는 자문연구원으로 일했는데요,. 당시 `VOA'에 세계은행에 출근했던 첫날의 소감을 밝혔습니다.
[녹취: 조성우] “첫 날 제가 온 날, 이 도표 보고 좀 약간 감정이 북받치는 게 뭐냐 하면 개인 목표가 두 가지 거든요. 북한에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 도와줘서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한반도가 공동 번영하는 것인데, 한 마디로 코리아란 말만 붙이면 제 개인 골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처음 이거 보고.. 감사하고. 울컥했던 거 같아요. ..”
‘빈곤 퇴치와 공동 번영’이라는 세계은행의 목표가 자신이 경제학자가 된 이유와 맞았다고 말하는 조성우 씨, 그러나 입사하고 1년이 될 무렵부터 또 다른 도전을 찾게 됩니다. 세계은행 내 연구원들의 극도로 세분화된 구조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조성우] “조언을 구했죠. 정부가 뱅크나 관료주의가 있고. 프로모션 되는 게 제한돼 있고, 충고하는 분들이 큰 기관에서 승진하려면, 시간이 쌓여야 올라갈 기회가 생긴다. 높은 포지션이 공석이 돼야 하니까, 그런데 승진을 목표로 하는 진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진로가 있는데..”
조성우 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학자로서 안정적인 진로를 찾기보다 경제학자로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곳을 찾기 위해 세계은행이라는 거대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조 씨에게 러브콜을 보낸 곳은 국제통화기금 IMF와 미 노동부 통계청의 연구조수로, 모두 정규직 자리였는데요, 통계청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세계은행에 근무하게 된 첫 탈북자가, 이번에는 미 연방정부 정규직으로 채용된 첫 탈북자가 됐습니다.
[녹취:조성우] “모든 연방정부 잡을 USJOB.COM 플랫폼을 통해서 하잖아요. 저도 일반적으로 서류를 냈고, 2주 있다가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8명의 매니저가 관심 있어 한다…6개 매니저가 1순위로 당신을 찍었는데, 2일 밖에 결정할 시간을 안 주더라고요. 그래서 또 야단법석을 떨었죠. 여기저기 알아보고. 물어보는 건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굉장히 직선적이고 솔직했어요. 사람들이 따뜻했고. 한 가지.. 워낙 통계청에서 사람을 안 뽑았으니까, 인터뷰 경력이 없더라고요. 저보다 매니저들이 더 긴장된 모습을 봤어요.”
노동부 통계청의 연구조수로 채용된 경제학자 조성우 씨는 지난 7월 9일부터 워싱턴 디씨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조 씨에 따르면 노동부 통계청은 미국 내 노동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녹취: 조성우] “저는 주로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자물가지수, 실업률, 생산성 등의 자류를 수집해서, 생산해서. 미국 국민을 위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게 분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조 씨는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수집할 때 제기되는 문제를 여러 가지로 연구해서 오차를 줄여 완전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성우 씨의 채용 면접관이었던 가격지수 연구부 티시아 가너 국장(Chair of the Division of Price and Index Number Research)은 `VOA'에, 조성우 씨는 이 부서에 완벽한 사람으로 경제학자로서나 인간적인 면모나 뛰어난 자질을 갖췄다며, 현재 의료가격지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티시아 가너] “He has wonderful qualifications as an economist and as a person as well. He is currently working on medical price indexes..”
조 씨는 자신이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한에서 나고 자란 탈북자이기 때문입니다.
조 씨는 자신은 향후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경제학자가 되고 싶지만 미국 시민이 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자유를 허락해준 미국정부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에서 일하지만 이 곳에서 생산되는 자료들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북한과도 무관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조 씨는 현재 미국 정부가 자신의 신분을 조사하는 과정이지만 북한 출신이란 이유로 추가조사 조항은 없는 것 같다며, 북한에 가족이 있는 만큼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신을 북한이 주시할 것을 고려해 조심스런 마음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공산국가 국민들은 모두가 공무원이어서 의미는 같지만 미국에서 공무원이 됐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우] “오리엔테이션 이틀 하는데, 절반 이상이 혜택… 노후가 부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은퇴한 다음에 연금 같은 거 때문에 안정된 노후가 보장됐다는 걸 트게.. 와서 보니까. 생활은 안정될 수 있겠다는 생각 하게 됐고요..”
무엇보다 공무원의 의무와 책임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조성우 씨의 아내인 그레이스 조 씨는 탈북자로서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며, 남편과 미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조] “솔직히 저는 탈북 난민으로서 미국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남편이 전에 일하던 국제기관에서 실력도 인정받았고, 남편이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어떤 기반도 없던 남편이 미국에서 국가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이민자의 땅 미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레이스 씨는 남편이 배움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며,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성우 씨는 그동안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나 탙북자 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사례가 되어 강연을 하는 등 영향력 있는 탈북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조 씨는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세 부류의 멘토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성우] “깜깜한 방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주위가 깜깜하고 안 보이니. 혼란스럽고 무섭고요. . 그런 저를 위로해주고 정서적으로 고무해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었고요. 저와 방에 같이 있지 않지만, 멀리 힘내라고 고무해 주는 분이 있었고요. 이미 그런 방을 나와서 문을 나와서 또 다른 방이 있는 거예요. 그 문들을 찾아서 겪은 분들이 문이 있을 수 있어 라는 이끌어 주는 커리어 멘토가 있었어요..”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남북나눔운동’ KASM의 대표로, 조 씨에게 정신적 멘토가 된 나승희 씨는 조 씨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녹취: 나승희] “제가 운전해서 만나러 갔는데, 손님을 맞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니까 영어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게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탈북자로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구사하는 모습을 본 나 대표는 조성우 씨에게 학업에 매진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줄곧 했다고 말했는데요, 지난 7년 동안 흔들림없이 소신을 갖고 있었던 만큼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성우 씨는 미국의 가치를 잘 알고 균형잡힌 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미국 정부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노동통계청 경제학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조성우 씨는 학자로서 성장을 위해 자리와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국 내 청년 탈북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조성우] “. 미국에 오면 모든 인생이 세상이 확 달라질 줄 알았는데, 어려움이 많고, 고난이 많았는데, 극복하고 대학 입학하고 졸업하니까, 직업문제가 있고, 재정 문제가 있고. 항상 보면 기회와 위기가 같이 있는데, 내가 하는 일만 나한테 도움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걸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걸 포기하지 않으려면 초심이 확고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거. 잘 하는 거. 사명감을 가지고 한다는 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젊었을 때 나의 직업인생에 초창기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말고 여러 경험을 하라고 하고, 안정성..추구하지 말고, 발전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가방 하나 가지고 움직일 준비가 되라고 하거든요”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