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미국 뉴스를 전해 드리는 ‘아메리카 나우’ 시간입니다. 김정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소식들이 있습니까?
기자) 네. 지난 11월 30일 서거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가 3일 연방 의사당에 안치됩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오는 5일 국장으로 치러집니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7일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증언합니다. 지난달 30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근처에서 강진이 발생했지만,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것은 현지 정부가 시행한 엄격한 건축규정 덕이었다는 소식, 이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진행자) 네. ‘아메리카 나우’ 첫 소식 보겠습니다. 미국의 41대 대통령을 지냈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향년 94세로 서거했는데요.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가 3일 워싱턴 D.C.로 운구되죠?
기자) 네.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가 대통령 전용기로 텍사스에서 운구돼 3일 오후 연방 의사당에 안치됩니다. 일반인들도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연방 의사당에 오면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에 참배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장례식은 언제 치러집니까?
기자) 오는 5일 오전 11시 워싱턴에 있는 국립 대성당에서 국장으로 거행됩니다. 부시 전 대통령 유해는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텍사스로 운구되고요. 다음날인 6일 부시 전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 있는 묘역에, 지난 4월에 별세한 부인 바버라 여사 옆에 안장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했고요.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연방 정부와 뉴욕 증권시장이 이날 하루 문을 닫습니다.
진행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고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기자) 네.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1924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고요. 18살이 되던 해인 1942년 해군에 들어가 해군 조종사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부시 전 대통령은 평생을 같이한 바버라 여사와 결혼했고요.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텍사스주로 이주해 석유 회사에 근무합니다.
진행자) 그래서 부시 전 대통령이 그래서 텍사스 석유업계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아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52년에 직접 석유회사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1962년 텍사스 해리스카운티 공화당 의장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는데요. 1964년에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이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었군요?
기자) 네. 하지만, 당선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66년에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는데요. 70년에 다시 상원의원 선거에 나갔지만, 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다른 공직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닉슨 대통령 시절엔 유엔주재 대사를 지냈고요. 포드 대통령 땐 중국 주재 미국 이익대표부 대표에 임명됐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이 부통령도 역임했죠?
기자) 그렇습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running mate)’, 즉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가서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1981년부터 1989년 초까지 레이건 행정부 때 부통령을 지냈고요, 1988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해서 41대 미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을 때 참 많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서냉전에 본격적으로 균열이 생겼고요.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소련 체제가 무너졌습니다. 한편 부시 전 대통령은 세계 초강대국 대통령으로 지도력을 발휘해 냉전 종식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 재직 기간 또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바로 ‘걸프전쟁’이라고 할 수 있죠?
기자) 맞습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1990년 석유 부국인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이에 부시 전 대통령은 다국적군을 조직해서 1991년 쿠웨이트 탈환전을 시작했는데, 이 전쟁을 걸프전이라고 합니다.
진행자) 걸프전은 다국적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다국적군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이라크 남부 영토에 진격하는 등 일방적으로 이겼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이겨서 큰 칭송을 받았습니다.
진행자) 걸프전 승리로 부시 전 대통령이 큰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불운했죠?
기자) 네. 부시 전 대통령은 1992년 재선에 도전했는데요.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신예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진행자) 전쟁에 승리한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였던 것으로 아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패인은 바로 흔들리기 시작한 국내 경제였습니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미국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고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됐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은 단임에 그쳤지만, 부시 집안의 정치적인 운이 다한 건 아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텍사스 주지사를 하던 장남 조지 W. 부시가 2000년에 치러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가서 당선된 겁니다.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와는 달리 재선에 성공해 8년 동안 대통령직을 지냈습니다.
진행자) 미국에서 부자가 대통령을 지낸 게 부시 집안이 처음이었나요?
기자) 아닙니다. 존 애덤스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부자가 있으니까 부시 대통령 부자가 두 번째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6년에 둘째 아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한 바 있습니다.
진행자) 41대 부시 전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도 서거할 때까지 당적을 초월해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통령이었지만, 당적에 매몰되지 않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재선을 막았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도 종종 같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5년 부시와 클린턴, 두 전직 대통령은 동남아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에 함께 참여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행자) 부시 전 대통령 서거로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이 누가 남은 건가요?
기자)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그리고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모두 4명입니다. 이들은 41대 부시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모두 성명을 내고 고인을 칭송하고 추모했습니다.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듣고 계십니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결국 연방 하원에서 증언하기로 했군요?
기자) 네. 코미 전 국장이 이 문제를 두고 연방 하원 정보위원회와 힘겨루기를 했는데, 결국 오는 7일 증언하기로 했습니다.
진행자) 정보위원회가 소환장을 보내서 비공개증언을 요구했는데, 결국 비공개증언이 성사됐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증언을 마친 뒤에 코미 전 국장이 자유롭게 언론과 회견할 수 있고, 증언록을 24시간 안에 공개한다는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하게 비공개증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코미 전 국장 측은 애초에 정보위원회 소환에 반발해 소송을 냈는데요. 증언 조건이 합의가 되자 소송을 취소했습니다.
진행자) 하원 정보위원회가 무슨 일로 증언을 요구하는 겁니까?
기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 문제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증언을 하라는 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왔던 클린턴 전 장관이 장관 재직 시절에 업무을 보면서 개인 이메일과 개인 저장 장치를 사용해서 논란이 됐었죠? 그래서 FBI가 이 문제를 조사했는데요. 그래서 하원 정보위원회는 당시 FBI 수장이었던 코미 전 국장에게 증언을 요구하는 겁니다.
진행자) 공화당 쪽에서는 FBI 조사에 불만이 많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FBI가 조사를 진행한 뒤에, 클린턴 전 장관의 개인 이메일 사용이 문제가 있지만, 기소하지는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하원 정보위원회 조사가 현재 로버트 뮬러 특검이 진행 중인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진행자) 연방 하원 회기가 끝나가는데, 그래서 그런지 하원 정보위원회가 두 사람 증언을 서두르는 모양새로군요?
기자) 맞습니다. 그런데 회기도 회기지만, 내년부터 정보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민주당 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현재 정보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쪽에서 증언을 서두르는 겁니다.
진행자) ‘아메리카 나우’, 한 가지 소식 더 들어보겠습니다. 지난달 30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인근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지진이 규모 7.0으로 상당히 강했지만, 지진 규모에 비해서 피해가 적었는데, 이유가 있었다는 소식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진 현장을 취재한 몇몇 미국 언론이 전한 내용인데요. 현지 정부의 엄격한 건축 규정 덕분에 지진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진행자) 엄격한 건축 규정이라면 내진 설계를 말하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알래스카주, 특히 앵커리지시 당국은 오랫동안 신축 건물의 내진 설계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지진으로 땅이 흔들릴 때 피해를 덜 입도록 건물을 세우도록 한 겁니다. 미국 지질조사국 소속 지질학자인 폴 카루소 씨는 지진에 잘 대비한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축하한다고 밝혔습니다. 카루소 씨는 그러면서 만일 다른 지역에서 이런 지진이 났다면 심각한 피해가 났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알래스카가 과거에 지진으로 크게 피해를 본 역사가 있는 모양이군요?
기자) 네. 지난 1964년에 규모가 무려 9.2에 달하는 지진이 알래스카주를 강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진에다가 쓰나미까지 겹쳐서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죠? 알래스카주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있습니다.
진행자) 규모 9.2라면 굉장한 위력을 가진 지진이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역사상 가장 위력이 셌고요. 세계 관측 사상 두 번째로 위력이 셌던 지진이었습니다. 이 지진 이후 알래스카주는 내진 설계 규정을 강화했습니다. 해당 규정은 국제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규정과 함께 가장 엄격한 규정으로 평가됩니다.
진행자) 캘리포니아주에서도 20여 년 전에 강한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죠?
기자) 네. 지난 1994년 로스앤젤레스시 북부에 있는 노스리지시에서 발생한 지진인데, 규모 6.7로 72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이번 알래스카 지진에선 사망자나 중상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알래스카 지진과 노스리지 지진을 비교하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상자가 덜 나온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진원의 깊이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진행자) 진원의 깊이라면 지진이 발생하는 곳이 지표면에서 지하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를 말하는 거죠?
기자) 맞습니다. 이번 지진의 진원 깊이는 약 40㎞로 측정됐는데요, 지진 전문가들은 엄격한 건축 규정뿐만 아니라 진원이 매우 깊었기 때문에 피해가 훨씬 적었다고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기자) 네. ‘아메리카 나우’,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