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꾼 소리의 창조자, 레이 찰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레이 찰스는 노래는 물론, 피아노 연주, 작곡, 작사, 거기에다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모두 소화하는 만능 음악인이었습니다. 레이 찰스는 또 서로 다른 분야를 조화시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팬들을 하나로 묶은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 평론가들은 그가 미국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고들 말합니다.
레이 찰스는 1930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알바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식 이름은 레이 찰스 로빈슨. 불행히도 레이는 5살 때부터 녹내장이 시작돼 6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레이는 눈이 안 보이자 실망하는 대신 소리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여러 가지 악기가 내는 소리에 매료됐고, 그것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레이 찰스는 오르간, 알토 색소폰, 클라리넷, 피아노를 주로 배웠고 특히 피아노는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15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레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플로리다주에 있는 흑인 식당이나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돈을 벌었습니다.
레이는 가수의 꿈을 펼쳐보기 위해 서북쪽 끝 대도시 시애틀로 갔습니다. 많은 노력 끝에 거기서 음반을 40개나 냈지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레이는 당시 유명한 흑인 가수 냇킹콜처럼 노래도 부르고 피아도도 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곧 냇킹콜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그와 똑같은 가수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비슷하게 근접했다 해도 사람들은 그런 복사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레이는 자신만의 개성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블루스와 재즈, 로큰롤과 재즈를 조화시키기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 음악은 주로 흑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백인들 중에서는 레이 찰스라는 시각장애 가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레이 찰스는 1950년대 중반 악단을 조직해 미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연주를 하고 음반도 냈습니다. 이 악단에서는 여가수가 등장해 노래도 불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레이 찰스는 단순한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가수에게 화답하는 형식의 노래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즉 리드 가수가 질문하거나 어떤 특정한 단어로 노래를 하면 다음 가수가 그것에 답을 하는 노래였습니다.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가져온 그런 형식은 흑인 교회에서 널리 불려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레이 찰스는 그날 저녁 그 곡을 로큰롤과 혼합된 형식의 음악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What'd I Say?’로 붙인 음반을 내놓았습니다.
이 곡은 ‘미국 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다’라고 표현된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What'd I Say?’ 는 수백만 장이 팔려나갔습니다. 이제 레이 찰스는 더 이상 흑인들의 소규모 댄스 무대에서 연주하는 무명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고 흥이 넘치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종에 관계없이 레이 찰스의 음악을 들으면 즐겁고 신명이 났습니다. 그는 어떤 인종이든 다 모이는 대형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대스타가 됐습니다. 1950년대 후반까지 레이 찰스는 대부분 흑인의 리듬 앤드 블루스 아니면 소울 곡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들도 이제 그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레이 찰스는 어떤 곡이 크게 인기를 끈다고 해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적으로 재즈에 손을 댄 그는 ‘Black Coffee’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내놓았습니다. 음악 전문가들은 이 곡이 레이 찰스의 재즈곡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평을 하고 있습니다. 레이 찰스는 이 곡에서 피아노로 여러 가지 다른 느낌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리듬 앤드 블루스와 재즈를 가미한 음반도 내놓았습니다.
컨트리와 웨스턴 음악도 언제나 큰 관심이었던 그는 이들을 조화한 음반을 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러나 음반 업계 전문가들은 말렸습니다. 무엇보다 팬을 잃을 수 있다, 팬들은 그런 종류의 음악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