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가 주최한 ‘종교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 참석한 탈북민 주일룡 씨가 북한 내 종교 탄압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현재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주 씨의 배경에는 북한에서 정치범으로 몰렸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김영교 기자가 주 씨를 만났습니다.
탈북민 주일룡 씨는 북한의 친척들이 종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잔혹하게 탄압을 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주일룡 / 탈북민] “My aunt’s family are all in a political prisoners’ camp. Also my cousin’s family were all executed for sharing gospels.”
고모와 그 가족이 고모의 시아버지가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고, 주 씨의 사촌 가족은 성경의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모두 처형됐다는 겁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북한을 떠난 주 씨는 17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도 정치범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주일룡 / 탈북민] “아버지가 9살 때 할아버지가 정치범 수용소로 잡혀들어가셨는데, ‘내 아버지를 빼앗아 간 나라’라는 아버지의 분노가 있었겠죠. 한 순간에 정치범의 자식으로 전락해 버린 상처가 있는 것이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군 장교로 복무한 엘리트였던 할아버지가 친구들과의 가벼운 대화에서 인권과 권력세습에 대해 이야기한 후, 수용소에 잡혀 들어가게 된 겁니다.
주 씨는 할아버지가 8-9년을 수용소에서 보낸 뒤 아버지가 성인이 되었을 때 풀려났다면서, 할아버지가 참전용사로 공이 있었기에 그 정도 선으로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주 씨는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VOA를 비롯한 외국 라디오를 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주일룡 / 탈북민] “나라에 대한 희망, 기대를 버리셨죠. ‘여기서 나가야겠다.’ 거기에 힘을 보태준 게 라디오죠. 라디오를 통해 외부 세계 정보를 들으시고 꿈을 키워나가셨습니다. 적어도 내 자녀들은 여기서 공부시키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주 씨의 아버지는 네 번의 시도 끝에 먼저 탈북했습니다.
이어 1년 후 주 씨도 어머니와 누나와 탈북에 성공하게 됩니다.
2008년 10월, 북한을 떠나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녹취: 주일룡 / 탈북민] “위기가 있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두만강까지 갈 때 초소를 통해서 가야 하는데, 여행증이 있어도 잘 안 들여보내주거든요. 답이 없었죠. 초소를 어쨌든 가야하니까 걸어가는데, 초소에 가까이 가니까 맑은 날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비에 군인들이 엄청 바빠져서 정신없이 막 뛰어다니는 사이 통과했습니다.”
주 씨는 남한과 북한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남북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임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주일룡 / 탈북민] “저희 가족은 다섯명이 모두 함께 있게 돼서 정말 축복을 받은 일이죠. 그래서 더더욱 저희만 누리지 않고 전달을 하려고…이 두 나라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분단의 상처를 이을 수 있는 그런 사명이 있다는”
주 씨는 올해 ‘종교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 회의’에 참석한 다른 26명의 전 세계 종교 탄압 경험자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종교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