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학들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국 남부의 대표적인 명문사립대학교, 듀크대학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남부의 하버드, 남부의 자존심"
듀크대학교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연구중심형 사립대학입니다. '남부의 하버드',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명문 사립대학교인데요. 아이비리그(Ivy League) 같은 명문 사립대학이나, UCLA, UC버클리 같은 대형 공립학교만큼 외국에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닌데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주 훌륭한 명문 사립대학으로 손꼽히는 학교입니다.
그럼 먼저 이 듀크대학교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학교인지, 미국에서 38년간 대학 진학 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로 알아볼까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듀크대학교는 US News & World Report 2020년도 평가에서 미국 전체 대학들 중 공동 10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 대학평가서인 'Times Higher Education(THE)'의 순위로는 전 세계 대학들 중 20위에 오른 대학입니다. 특히 학부는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들로 평가되는 북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처럼 ‘최고로 입학하기 어려운(Most Selective)’ 등급에 속합니다."
"감리교 신자들이 세운 학교로 출발 "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 시에 자리 잡고 있는 듀크대학교는 1838년에 설립됐습니다. 180여 년 전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시골 지역에 살고 있던 기독교의 한 분파인 감리교 신자들, 그리고 역시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사회봉사나 교육 활동에 특히 진취적이었던 퀘이커 신자들이 설립한 조그만 학교가 오늘날 듀크대학교의 시초인데요. 이후 담배 재벌인 듀크 가문의 재정적 뒷받침에 힘입어 학교가 크게 발전하고, 듀크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명할 때까지 듀크대학교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듀크대학교가 걸어온 발자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로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듀크대학교는 감리교 신자들과 퀘이커교 신자들이 1838년, '브랜틀리 요크'라고 하는 교수를 청빙해, 사설 강습소 같은 성격의 ‘브라운스스쿨하우스(Brown’s Schoolhouse)’를 설립해 지역 주민의 자녀들을 교육하였던 시절로 그 뿌리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듬해 '유니언인스티튜트(Union Institute)'로 이름이 바뀌면서 주 정부에 정식 교육기관으로 등록했는데요. 하지만 퀘이커교 신자들이 독자적인 교육기관을 세우면서 유니언인스티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러자, 요크 교수의 후임으로 취임한 브랙스톤 크레이븐 학장이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고, 1851년 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노말칼리지(Normal College)'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주 정부 차원의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공립학교 시스템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그러자 목사 자격증을 갖고 있던 크레이븐 학장은 감리교단에 도움을 요청했고요. 감리교단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859년 이 학교는 감리교 목회자를 배출하는 '트리티니칼리지(Trinity College)'라는 이름의 신학교로 바뀌게 됩니다.
"듀크 가문의 지원"
그런데 감리교단 소속의 신학교였던 트리니티칼리지가 어떻게 일반 종합대학인 듀크대학교로 변모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건 바로 당시 담배 농사로 큰 재벌이 된 듀크 가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 계속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담배산업과 전력 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거부가 된 듀크 가문이 있었습니다. 이 듀크 가문의 '워싱턴 듀크'는 오래전부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 트리니티칼리지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듀크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는 특혜가 주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이 대학에 당시로서는 거액인 30만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당시 미국 내 교육기관이 거의 모두 그랬던 것처럼 트리니티칼리지도 남학생만을 교육시키는 고등 교육기관이었는데요. 트리니티칼리지는 이를 받아들이며 학교 안에 여자대학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 캠퍼스 안에서 남녀공학이 실시된 것은 1972년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을 만큼 보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대학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이은 듀크 가문의 아들들"
워싱턴 듀크의 아들들인 벤저민과 제임스 듀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대학에 대한 애착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특히 둘째 제임스 듀크는 오늘날의 듀크대학이 있게 한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제임스 듀크는 자신의 재산 4천만 달러를 출자하여 1924년 듀크재단을 설립해,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병원, 대학교, 고아원, 교회들을 설립하고, 트리니티칼리지를 더욱 든든한 대학으로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제임스 듀크는 1925년 사망하면서 당시 금액 6천700만 달러를 듀크 재단에 헌납했습니다."
제임스 듀크가 기증한 재산은 2018년 기준, 9억 5천만 달러가 넘습니다.
"듀크대학교의 탄생"
이렇게 풍부한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동부의 우수한 교수진을 영입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는데요. 그러면서 학교 측은 학교 발전을 위해 막대한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듀크 가문을 기려, 학교 이름을 듀크대학교로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제임스 듀크는 사망하기 전해인 1924년 아버지 워싱턴 듀크와 가문의 이름으로 학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듀크대학교는 대형 사립 종합대학교로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
"학생 현황"
그럼 오늘날 듀크대학교의 학생 현황 한 번 살펴볼까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2019년 대학 웹사이트에 따르면 학부생으로 6천900여 명, 대학원생이 약 8천800여 명이 있으며 3천700명 넘는 교수진과 약 4만 명의 교직원이 있습니다. 아시아계의 우수한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그 역할이 매우 높은 대학입니다. 또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97%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보면 듀크대학교 학생들이 학교를 사랑하고 일단 입학을 하고 나면 힘껏 공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런가 하면 교수대 학생의 비율은 1명당 6명 꼴로 이 지역 어느 학교보다 좋은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네요.
"듀크대학교의 모토"
미국의 여러 오랜 명문 대학이 진리, 자유, 정의, 학문, 그리고 종교성 짙은 표현들을 모토, 구호로 삼고 있는데요. 듀크대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듀크대학교의 모토는 '심오한 학문연구와 종교'인데요. 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도움말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듀크대학교 역사 기록서에 따르면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의 동생이며 6천500여 곡의 찬송곡을 작사, 작곡한 찰스 웨슬리 목사의 찬송곡인 ‘거룩한 지식(Sanctified Knowledge)’에서 인용한 ‘심오한 학문과 거룩한 신앙 (Eruditio et Religio)’을 모토로 채택했습니다. 듀크대학교는 감리교단의 지원을 받고 감리교 신앙의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한 대학이긴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은 순수한 학문기관으로서, 인류와 지역사회에 거룩하고 신성한 도덕적 책임을 바탕으로 최고의 학문을 전수하려는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라고 하겠습니다."
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은 남부의 자존심, 남부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듀크대학교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봤는데요. 다음 이 시간에는 듀크대학교의 좀 더 다양하고 유익한 이야기 들려드리겠고요.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