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평양에 중국어능력시험(HSK) 센터가 문을 열고, 중국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하는 공자학원이 곧 들어서는 등 북-중 문화 교류가 크게 강화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의 북한 내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2년째 재개되지 못하는 상황과 대조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외국어 교육을 중시하고 있으며, 중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이 날로 많아지고 있다.”
북한 교육위원회 보통교육성 박순덕 부상이 지난 9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중국 공자학원의 첫 북한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에서 한 말입니다.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하는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직속기관으로 전 세계에 500곳이 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자학원총부 홈페이지와 중국 관영 ‘인민망’은 평양외국어대학에 설립될 공자학원이 북한 최초의 중국어 전문교육기관으로 북-중 친선관계의 가교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5월 7일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PUST)에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어능력시험(HSK) 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평양의 중국대사관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이 1990년 시작한 중국어능력시험(HSK)의 137번째 국가이자, 1천 141번째 센터입니다.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센터 개소 당시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 신문에 “북한에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Chinese learning fever)며, 과거에는 러시아어와 영어가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였지만 지금은 중국어가 대세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인들은 중국어를 배우면 취업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으며, 북한의 많은 학교가 중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 산하 무역진흥기구인 코트라 상하이무역관도 최근 북한 내 이런 분위기를 전하며, 공자학원 설립이 “중국어 열풍에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 6월 방북을 전후해 북-중 교류를 강화하는 정치선전의 일환일 뿐, 북한 내 중국어 열풍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란 지적도 있습니다.
과거 중국에 다년간 유학했던 북한 출신 관계자는 6일 VOA에, 중국어는 20년 전부터 영어와 함께 열기가 가장 뜨거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 관계자] “중국어가 지금 핫해진 게 아니라 20년 전부터 핫해졌었습니다. 영어와 중국어가 제일 비중이 많은데, 영어가 전통적으로 유리하다가 한 때 중국어 학과가 인원수가 초과된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배우기가 쉽고 실질적으로 유용하니까. 그래도 나중에 보면 모든 국제관계에서 영어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영어 쪽에 힘센 사람들이 더 많이 갔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교류에 수위를 조절해 왔고, 중국도 북한과의 교류 자체를 지렛대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공자학원 같은 공식 기관은 없었어도 북한인들의 중국어 열기는 꾸준했다는 겁니다.
코트라와 ‘인민망’에 따르면 북한은 매년 중국에 유학생 400명을 파견하며, 별도로 교원 200명을 6개월에서 1년 기간으로 연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 출신 관계자는 평양의 경우 대학생과 외국어 학원생은 영어를 모두 기본으로 공부하면서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의 중국어 인기는 “실용성”과 관계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 관계자] “외화를 벌 수 있는 게 현실적으로 중국어밖에 없으니까. 실질적으로 중국을 통해 모든 무역을 하지 미국하고 직접 하지 않으니까. 전문 외교관이 아니고서는. 그래서 중국어가 현실적으로 유용하다 해서…”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은 최근 중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라 안내원 인기도 증가하고 있다며, 95%에 달하는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 등으로 중국어 인재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북한과 중국 당국이 이렇게 중국어 교류를 강화하는 것과 달리 17년 가까이 진행됐던 북한과 영국의 영어 프로그램 교류는 2년 넘게 재개 움직임이 없습니다.
영국문화원은 2000년부터 2017년 8월까지 평양외국어대학 등 여러 대학과 기관에 영어교사를 파견해 북한 교원들과 학생들을 가르쳤었습니다.
또 북한 학생들과 대학교수 등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영국에서 유학과 연구 과정을 밟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2017년 북한 당국의 핵·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되자 영국인의 모든 북한여행을 자제하라는 주의보를 내린 뒤 프로그램을 재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유학생 출신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최근 워싱턴에서 가진 행사에서 영국의 대북 교류 프로그램이 북한 엘리트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며, 중단에 아쉬움을 나타냈었습니다.
영국 외교부 당국자는 앞서 VOA에, 영국문화원 프로그램을 통해 17년 동안 수 백 명의 교사와 학생 4천 500 명의 수업료를 제공하며 북한 교원과 학생들이 외부 세계의 다른 견해를 체험하도록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북한과 영어 프로그램 재개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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