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계류 중인 올해 북한인권 결의안은 북한 내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코로나 등 인도적 위기 대응을 강조한 게 특징입니다. 또 한국전쟁 중 북한에 억류된 한국군(국군) 포로와 후손들이 겪는 인권 침해 우려,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정’ 준수도 처음으로 명시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럽연합이 올해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한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은 북한 내 인권 침해에 대한 ‘책임 규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임 규명’ 단어가 모두 16번 언급됐는데, 이는 지금까지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 결의안 가운데 가장 많은 겁니다.
올해 결의안은 예년처럼 “북한 내 심각한 인권 상황과 불처벌 문화의 만연, 인권 침해와 학대에 대한 책임 규명 결여에 관해 깊이 우려한다”며 총 10개 항에 걸쳐 ‘책임 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롭게 추가한 17항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협력해 향후 책임 규명을 위한 전략 개발과 국제법에 따라 북한에서 국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워싱턴 소재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8일 VOA에, 북한 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증거 기록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책임 규명’ 강조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The Seoul Office of the 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has been focused on this particular issue of accountability. Seoul Office has collaborated with civil society organizations with CSOs with particular focus on this issue of accountability. Evidence documenting crimes against humanity in North Korea has been mounting.Accountability continues to remain a big issue.”
이런 이유 때문에 서울의 유엔인권사무소가 책임 규명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이 사안에 중점을 둬서 협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올해 결의안은 또 북한 내 인도적 위기,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협조에 우려를 나타내며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적극 촉구했습니다.
지난해 결의안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4번 언급했지만 올해는 11번을 언급하며 북한 지도부의 장기간에 걸친 국경 봉쇄 등 코로나 팬데믹과 대응 조치가 주민들에게 미칠 부정적 타격을 우려한 겁니다.
특히 북한 당국에 백신 공동구매 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 등 관련 기구들과 협력해 코로나 백신의 시의적절한 전달과 분배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는 북한 주민 개개인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주민 개개인은 국제 요원들의 입국과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지원 수송의 우선순위 등 세계보건기구(WHO)가 제공하는 지침과 모범사례에 따라 최고 수준에 달하는 건강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8일 VOA에, 이런 지적은 북한 당국의 코로나 대응 조치가 국제 기준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희석 법률분석관] “코로나 같은 경우도 작년부터 시작된 문제지만 북한 지도부의 대처가 작년 결의안에서도 그렇고 국제법과 원칙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그런 것을 명시하면서 추가로 북한이 코백스를 통해 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위해 백신을 도입하라…”
전문가들은 올해 결의안에서 북한 내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책임 규명 노력과 코로나 등 인도적 위기에 대한 지원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결의안은 새롭게 추가한 조항에서 “포괄적 접근의 필요성에 따라 ‘관여’와 ‘책임 규명’의 투 트랙 접근방식 유지를 포함하는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송환되지 않은 전쟁포로들과 그 후손의 계속되는 인권 침해 혐의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며 한국전쟁 국군포로에 대한 우려를 처음으로 명시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한국전쟁 중 최소 5만 명의 국군포로가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은 채 광산 등지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에 시달렸으며, 500여 명의 생존자가 여전히 억류돼 있는 것으로 추산했었습니다.
신 법률분석관은 “한국 안팎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국군포로 문제가 유엔총회 결의안에 최초로 담긴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며,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적극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아울러 올해 결의안은 예년처럼 북한 지도부에 “정치범 수용소의 즉각적인 폐쇄와 모든 정치범을 조건 없이 지체하지 말고 석방할 것”을 촉구하면서 처음으로 넬슨 만델라 규정으로 불리는 ‘수감자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유엔 기준 규정’의 준수를 촉구했습니다.
신 법률분석관 등 전문가들은 제소자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며, 특히 북한 내 정치범은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수감자 보호 원칙 강조는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희석 법률분석관] “구금 시설에 대해서 국제 기준에 맞게 개선하라는 내용이나 고문과 학대를 근절시키라는 내용이 추가된 것도 역시 계속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런 이슈들을 제기하겠다는 것을 유엔 차원에서 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이달 중순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위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유엔 관계자들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안할 때 17년 연속 결의안 채택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