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 구금시설에서 겪은 끔찍한 인권 유린 실태를 털어놨습니다. 북한 당국이 강제 북송된 주민을 얼마나 잔혹하게 다루는지 생생히 묘사했습니다. 국경봉쇄 지침을 어기고 탈북한 이들은 송환 시 훨씬 가혹한 처벌에 직면한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14일 미 하원 레이번 건물에서 열린 탈북민 증언 행사에 참석한 탈북 여성 3명은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뒤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고통스럽게 떠올렸습니다.
[녹취: 이하은 씨] “허리를 펴지 못하고 어지럼증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쓰러지는 상황이 너무 많이 일어났지만 간수들은 빨리 걸으라 하고 계속 때립니다.”
코로나 팬데믹 발병 직전인 지난 2019년 탈북한 이하은 씨는 워싱턴의 민간 단체인 디펜스포럼(DFF)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북송 직후 량강도 보위부 집결소에서 겪은 구타와 고문을 고발했습니다.
식량을 제대로 주지 않아 수감자들이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10시간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문, 빈번한 구타, 불결한 위생으로 몸에 땀내와 이가 득실한 환경에서 공포에 떨며 지냈다고 회고했습니다.
두 번의 강제 북송에 따른 구타와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여러 질병을 앓고 있다는 지하나 씨도 집결소와 교화소에서 겪은 악몽 같은 수감 생활을 증언했습니다.
[녹취: 지하나 씨] “매일 같이 몽둥이로 때리고 가죽 혁대로 때리고 머리끄덩이를 잡아 벽에 때리고 말로 정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 같은 눈빛으로 저를 보는 그 친구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흐느낌)”
지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집결소에서 다리를 절며 나오며 봤던 기차역 뒷산에 놓인 구호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지하나 씨] “나오면서 ‘김정은 동지를 위해서는 슬픔도 고난도 행복이다’라는 구호를 보는 순간 저는 정말 끓어오르는 격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에 이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12살 때 엄마와 헤어져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소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한송미 씨는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여러 폭행에 시달리는 북한의 여아와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특히 19살 때 한국에 먼저 정착한 엄마의 도움으로 도강하면서 국경경비대에 붙잡힐 경우 자살까지 결심해야 했던 상황을 영어로 자세히 설명해 주위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녹취: 한송미 씨] “I knew if I got captured, my relatives could be punished. So I decided if I got caught that I would kill myself”
이하은 씨는 북한 집결소에서 당할 때는 모두 다 그렇게 겪고 사는 줄 알았다며 한국에 와서야 북한 정권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한 인권 침해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하은 씨] “지금의 이야기들이 지난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것이 너무 슬픕니다. 21세기에 아직도 인권이란 말조차 모르며 철창 없는 감옥 같은 그 땅에서 사는 북한의 모든 주민과 여성들을 위해 세계 여성 인권 관계자 모든 분들이 주목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정기 보고서에서 탈북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인권 침해를 자세히 설명하며 북한 당국에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출입국할 수 있는 기본권을 인정하고 송환된 주민이 처벌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살몬 보고관 보고서] “Recognize the fundamental right to leave and enter the country both in law and in practice, and ensure that those who are repatriated are not subjected to punishment upon repatriation,”
디펜스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은 행사 후 VOA에 국제사회가 핵·미사일이 아닌 인권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기 위해 행사를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집중하느라 인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느껴 주위를 환기하고 싶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숄티 회장] “We feel like the human rights has been bumped off because of the nuclear tests and and the missile launches that people are focusing on that. So we're trying to get people to focus attention on the atrocities that have been committed against the North Korean people to raise..”
숄티 의장은 또 중국 구금시설에 수감 중인 600명 이상의 탈북민 중 다수는 이동이 극도로 제한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체포돼 북송될 경우 훨씬 더 끔찍한 처벌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한국에서 탈북민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친 공로로 최근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 미국인 케이시 라티그 북한이탈주민 글로벌교육센터(FSI) 공동대표도 이날 행사에 참석한 뒤 VOA에 북한 주민의 자유, 특히 ‘이동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라티그 공동대표] “North Koreans need freedom. They are some of the most persecuted people in this world.
It's something that Christopher Hitchens said one time is that North Korea is the worst country in the world because they won't let you live, but they won't let you leave. They won't let you live the life that you want, but they won't let you leave.”
특히 세계 100대 지식인으로 선정됐던 영국계 미국인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북한을 세계 최악의 국가로 꼽으면서 ‘주민들이 살 수도(live) 없고 떠날 수도(leave)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한편 이하은 씨는 행사 후 VOA에 남편이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몰래 청취하다 발각돼 관리소인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후 실종됐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 정권이 원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하은 씨]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표현의 권리, 언론의 권리, 왕래(이동)의 권리, 그런 데서 우리가 자유함을 못 누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해 주고 함께 소리를 내서 21세기에도 아직 저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인권 문제를 같이 빨리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외부 정보 접근에 대한 더 엄격한 처벌과 국내 여행을 더 제한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어떻게 말하고 소통하며 상호작용하고 정보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엄격히 규정된 정부의 요구 사항이 정보 접근 등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더욱 제한한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세계 70개 이상의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이 연대한 북한자유연합(NKFC)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제67차 여성지위위원회(CSW) 행사의 일환으로 오는 16일 탈북 여성들의 증언 행사를 뉴욕에서 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뉴욕의 북한대표부 건물 앞에서 ‘김정은 때문에 고통을 겪은 오토 웜비어와 모든 사람을 위한 헌화식’을 열 계획입니다.
또 중국 대표부 앞에서 탈북민들에게 자유 세계로 가기 위한 안전한 통로를 허용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연 뒤 유엔본부 앞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