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탈북민들이 직접 겪은 강제북송 실태를 폭로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제작진은 이 영화가 중국의 강제북송 중단과 북한의 체제 변화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혜산 출신으로 지난 2002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허영철 씨(60)의 직업은 영화감독입니다.
나이 마흔 가까이에 한국에 정착한 그는 우연히 본 영상 촬영과 편집 과정에 호기심을 느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뒤 지난 20년 가까이 촬영기사, 영상 편집기사, 프로듀서 등 다양한 영상 관련 직업에 종사했습니다.
지난 2005년에는 단편 영화 ‘뿌리’를 제작해 부산시네마영화제에서 창작상을 받았고 원코리아 미디컴 프로덕션을 세워 탈북민 후배들에게 영상 제작 기술도 가르쳤습니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촬영과 감독, 편집, 컴퓨터그래픽 등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허 감독은 지난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우연히 2천여 명의 탈북민이 중국에 억류돼 북송 위기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과거 중국에서 강제북송돼 고문받고 철창신세도 졌던 허 감독은 옛날의 악몽이 떠올랐고 시나리오를 수정해 탈북민의 강제북송 등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올해 5월,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녹취: 허영철 감독] “남한에 수많은 유명한 영화감독도 있고 언론도 있지만 듣기만 했지 체험자들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북송을 당해봤고요. 감옥에서 고문도 받아 받고요.”
탈북민 감독이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 각지에서 북송의 아픔을 겪었던 이름 모를 탈북민들의 응원과 지원이 쇄도했습니다.
[녹취: 허영철 감독] “그동안 우리가 허투루 살아 안 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영화를 찍는다고 호소하니까 전국에서 탈북자들이 동참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단체보다 오히려 개별적 탈북자들이 많은 지원을 했어요.”
배우, 세트, 소품 제작, 운전 등 다양한 분야에 자원봉사자로 합류한 탈북민이 100여 명. 인권 운동가 등으로 활동하다 영화 ‘도토리’팀의 팀장으로 지난해 합류한 이동현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중국에서 두 번의 강제북송과 투옥, 재탈출을 반복했던 이 팀장은 단식 투쟁 등을 하며 한국 정부에 탈북민 보호를 호소했지만 한계를 느껴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동현 팀장] “제한성(한계)을 느꼈어요. 우리 인권활동가들이 길거리에서 투쟁하며 목소리를 내고 정부에 항의했지만 부메랑이 되어 한 자리에 맴도는 거예요. 그러나 영화는 국민의 마음을 흔들 수 있고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잖아요.”
이 팀장 등 많은 탈북민은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며 18년간 악착같이 제작비를 모으고 시나리오를 준비한 허 감독의 열정에 감동해 신뢰를 갖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영화 ‘도토리’는 2시간 40분 분량의 극영화로 제작 중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에 정착한 실향민 할머니가 탈북 손녀와 상봉하는 3대에 걸친 굴곡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허 감독은 ‘도토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녹취: 허영철 감독] “왜 도토리냐, 일제 강점기 때도 가난해서 먹을 게 없어 도토리를 주워 먹었고, 6·25 때도 피난길에 쉽게 얻을 수 있는 식량이 도토리이고, 북한의 고난의 행군 때도 농사가 안되면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도토리에요. 그리고 탈북자들이 중국에 넘어오면 개밥에 도토리, 개도 도토리 안 먹는데, 그런 여러 복합적인 내용이 영화에 담겨 있어요. 북한에선 배를 채우는 식량 대용인데, 한국에선 건강식품이죠.”
비단 탈북민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유명 영화인 ‘국제시장’처럼 3대에 걸친 인생을 통해 “북한인들이 김동환의 시 ‘국경의 밤’ 이후에도 100여 년째 목숨 걸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를 당사자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예산 때문에 제작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했던 허 감독과 탈북민들은 북한의 감옥 세트장부터 소품까지 대부분을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허영철 감독] “우리가 직접 북송돼 고문도 직접 받아봤기 때문에 탈북하는 과정도 보여주고 북한 감옥도 우리가 일부러 만들었어요. 북송되어 고문당하던 그 감옥을 똑같이 만들었어요. 거기에서 지금 촬영하고 있어요.”
허 감독은 또 탈북민들의 연기력에 대해 처음에는 다소 우려했다며 그러나 “직접 체포와 강제북송, 고문을 당한 당사자들이어서 기대 이상으로 매우 실감 나게 연기”해 본인도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허 감독은 또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최근의 북한 내부 상황과 북중 국경 지역을 어렵게 촬영한 영상도 영화를 통해 소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탈북민들이 간절한 한마음으로 십시일반 돈과 정성을 모아 만들기 때문에 최고의 예산으로 만드는 영화와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팀장도 “탈북자가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를 봐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탈북자 당사자들이 직접 영혼을 갈아 넣어 진정성을 담은 첫 장편 영화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동현 팀장] “우리는 북한이란 독재사회에서 생존한 사람들이거든요. 그 생존자들이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연기하고, 그 노래까지도. 생존자들이 직접 부르는. 그러니까 오롯이 탈북민들의 영혼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감독님이 늘 그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제작진은 영화 촬영을 80~90% 마쳤으며 다음 달부터 편집을 거쳐 12월에 한국과 미국 동시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 등 많은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한 후반 작업때문에 재정적 압박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제작을 돕고 있는 북한 김일성만수무강연구소(만청산 연구원) 출신 김형수 징검다리 공동대표는 이 소식을 듣고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후원을 호소했습니다.
김 대표는 26일 VOA에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탈북민들의 열정과 희생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면서 “탈북민 600명 북송 소식을 듣고 염려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수 대표] “아직 북한인권은 지금도 한국분들에게는 와닿지 않으니까 후원이 많지 않죠. 그래서 탈북자들이 조금씩 모으고 한국분들 중에 북한인권을 아는 분들이 조금 도와주신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 영화 하나 만드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아 이젠 조금만 더, 이제 마지막이고 좀 더 힘을 받아야겠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김 대표는 특히 많은 탈북민 배우는 북한에 가족이 있는데도 독립운동을 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보수도 받지 않은 채 출연했다며 “그 심정을 귀하게 봐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김형수 대표] “그들은 지금 북한에 있는 가족을 봤을 때도, 한번 출연해 얼굴 내 보이면 사실 가족에게 위험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나간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 결심이.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지금 피해받는 북한 주민들이 너무도 불쌍하고 가슴 아프니까 목숨 걸고 하는 거잖아요.”
김 대표는 한국 통일부 등에서 약간의 제작비를 지원한 것으로 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탈북민 북송 위기가 드물게 국제 관심을 받는 지금, 영화가 완성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강조했습니다.
허 감독은 미국의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NKFC) 대표와 인권재단(HRF) 임원진이 최근 촬영장을 방문해 격려했다며 상황이 녹록하지 않지만 혼자서라도 끝까지 영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영철 감독] “그들의 만행을 계속 고발해서 세계 이슈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그러나 침묵하고 아무도 말을 안 하면 영원히 못 막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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