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제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주세요”…강제북송된 탈북민 가족 윤 대통령에게 편지


지난해 중국에서의 김철옥씨 모습. 사진 = 김혁 박사 제공.
지난해 중국에서의 김철옥씨 모습. 사진 = 김혁 박사 제공.

지난달 9일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의 언니 규리 씨가 영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동생의 구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철옥 씨 등 수백 명이 강제 북송된 지 40여일이 지나도록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가운데 규리 씨는 “제발 동생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김규리 씨] “그때 동생이 뒤따라 나오면서, 자기도 같이 가겠다 하는 거 저랑 오빠랑 ‘너는 집에, 집이나 지켜라’ 이러면서 떨궈놓고 왔었거든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게 아 13일날. 7월 13일날.”

김규리 씨는 아직도 26년 전 동생 철옥 씨와의 마지막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 7월 13일 스무 살이던 규리 씨가 먹고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할 때 열네 살이던 동생 철옥 씨는 자기도 언니를 따라가겠다며 울먹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동생을 강물을 헤엄쳐 건너야 하는 탈북 길에 함께 데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규리 씨는 오빠에게 “꼭 돈 많이 벌어서 철옥이랑 오빠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브로커를 따라 중국에 팔려갔습니다.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던 어린 철옥 씨는 “중국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이듬해인 1998년 열다섯 살의 나이에 중국의 오지 마을로 팔려갔습니다.

거기서 자신보다 서른 살가량이나 많은 남자와 만나 결혼하고, 이듬해 열 여섯살에 딸을 낳았습니다.

중국에서도 산간오지라 한국 사람은커녕 북한 사람조차 만나기 어려워 ‘조선말’도 거의 다 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난 2020년 먼저 탈북해 영국에 정착한 언니 규리 씨와 큰언니 유리 씨가 수소문 끝에 동생 철옥 씨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제대로 된 신분이 없어 언제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될지 모르는 동생을 설득해 영국에 함께 데려가고자 했지만, 중국에 딸과 가족이 있던 철옥 씨는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 여파로 국경이 봉쇄됐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코로나에 걸려 고열 등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불안정한 신분 탓에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번 맞을 수 없었던 철옥 씨는 가까스로 회복한 뒤 결국 중국을 벗어나 언니들이 있는 영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남편과 딸도 철옥 씨가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랐습니다.

지난 4월에서야 철옥 씨는 태국을 거쳐 언니들이 있는 영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지만 다른 탈북민들과 함께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가족들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9일 다른 탈북민 수백 명과 함께 강제 북송됐습니다.

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 열다섯 살에 배가 고파 탈북했다가 25년 만에 다시 피붙이 하나 없는 북한으로 강제 북송된 것입니다.

규리 씨를 비롯한 철옥 씨 가족들은 한국과 미국 정부, 영국 의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철옥 씨의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하며 구명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철옥 씨의 행방이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규리 씨는 영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 방문 첫 일정으로 20일 런던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포와의 만찬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규리 씨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과 악수도 나누고 기념 사진 촬영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꽃제비 출신으로 영국 의회 ‘북한 문제에 관한 초당파 의원 모임(APPG-NK)’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티머시 조 씨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동생의 구명을 호소하는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강제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 언니 규리 씨가 런던을 방문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 중 일부.
강제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 언니 규리 씨가 런던을 방문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 중 일부.
강제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 언니 규리 씨가 런던을 방문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 중 일부.
강제북송된 탈북민 김철옥 씨 언니 규리 씨가 런던을 방문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 중 일부.

규리 씨는 편지에서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윤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한 뒤 “제가 펜을 들게 된 이유는 한 달 전 강제 북송된 제 동생을 살리고자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규리 씨는 동생이 탈북에서부터 강제 북송되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을 설명한 뒤 “중국에서 25년 동안 딸도, 남편도 있는 한 가정의 엄마이고 아내였던 철옥인데 어려서 북한을 떠나 북에는 아무 가족도, 신분도 없다”며 “북한 당국은 이런 철옥이를 심하게 취조를 할 것이며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하고 병들게 만들어 결국 죽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교도소에서 무덤도, 이름도 없이 험하게 돌아가신 저의 오빠의 사례가 있어 동생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없다”며 “나라를 잘못 만나 태어난 죄, 불쌍한 철옥이를 살릴 수 있게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규리 씨는 2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영국에서 하던 반찬가게도 접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해 답답해 하던 중에 윤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편지를 썼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규리 씨] “그 누구도 지금 아직까지도 저한테 연락을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또 마침 이번에 그 윤 대통령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제가 그냥 일단은 손편지라도 좀 전해볼까. 해가지고 그러면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

규리 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지난 4월 철옥 씨가 중국 공안에 붙잡힌 뒤부터 중국 당국과 한국 외교부, 주한미국대사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등에 구명을 호소했습니다.

가족들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면담을 갖고,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상원에서 개최된 유럽 북한인권포럼에서도 중국에서 북송된 철옥 씨를 구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통일부와 외교부, 유엔과 미 국무부 등 그 어느 곳에서도 철옥 씨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녹취: 규리 씨] “유엔이나 저기 영국, 한국, 미국…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규리 씨는 오빠도 탈북하려다 몽골 부근에서 붙잡혀 강제 북송돼 2002년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교화소에서 너무 많이 맞아서 숨졌다고 전해들었다며 동생마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규리 씨는 철옥 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공안에 붙잡히기 직전인 지난 4월 5일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규리 씨] “붙잡히는 날, 예, 출발, 출발하기, 출발하기 1시간 전인가, 저랑 통화했었거든요. ‘언니 이제는 간다. 이제는 더 이상 통화 못해’ 하고 끊고, 그리고 소식이 없죠. 그 다음부터는.”

규리 씨는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난 1997년 7월 13일 헤어지기 싫어하는 동생을 떨어뜨려놓고 탈북하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며 울먹였습니다.

[녹취: 규리 씨] “그 상황은 제가 또 완전히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또 더 못 데리고 갔고 그랬거든요. 그냥 ‘철옥아 너는 집이나 지켜’하고 서리. 막 뒤에서 따라오고 싶어가지고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그게 아직도 그냥…….”

김철옥(두 번째 줄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여아)씨가 어린 시절 북한에서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 = 김혁 박사 제공.
김철옥(두 번째 줄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여아)씨가 어린 시절 북한에서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 = 김혁 박사 제공.

지난달 초 중국에 억류 중이던 탈북민 수백 명이 강제 북송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중국과 북한을 향해 탈북민 강제 북송과 고문 등 인권 유린 행위 중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엔총회에서 인권을 담당하는 제3위원회는 지난 15일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컨센서스(합의)로 채택했습니다.

결의안 공동 제안국으로는 미국과 한국, 일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 멕시코와 칠레, 과테말라 등 중남미 국가들, 전시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등 62개국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은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하며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명시한 ‘고문방지협약’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여전히 탈북민 강제 북송과 고문 등 인권 유린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탈북민을 ‘인간쓰레기’라고 매도했고, 중국은 북한 내 고문과 인권 침해의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울먹이던 규리 씨는 끝으로 “그저 동생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규리 씨] “저는 다른 바램이 없구요. (중략) 북한에는 남아있는 가족도 없고, 근데 대신 중국에는 본인 가족이 있잖아요. 가족 품으로 좀 돌려보내줬으면, 그 바램뿐이에요.”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Forum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