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세외 부담 척결을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더 다양하게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국가 자산 일부 민영화 등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해외 파견 중 지난해 탈북해 A국에 정착한 전직 북한 간부 B씨는 8일 VOA에 북한 당국의 세외 부담 요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B씨는 “평양에선 작은 노점상도 등록을 의무화해 시장세 등 각종 세 부담을 지운다”며 “학교 운영비, 주택 건설, 인민군대 필수품 등에 대해서 직장 단위와 인민반장의 요구가 끊이지 않아 불만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데일리NK’와 ‘아시아프레스’ 등 한국과 일본의 대북 매체들도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장기간의 국경 봉쇄로 북한 경제가 더 악화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당국의 각종 세외 부담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74년 세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고 공포했지만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주민들에 대한 강제 수탈행위는 오히려 더 늘어나 주민들의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9일 VOA에 세외 부담이 증가했다는 소식이 “놀랍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t is not surprising. Given the lack of money coming from abroad, a slightly less export during the pandemic, the need from the state to always squeeze whatever resources come from the people, it's a continuous effort on the part of the state to squeeze resources”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이 부족하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수출이 다소 줄면서 정부가 주민들로부터 모든 자원을 쥐어짜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 정부는 국내 모든 단위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이러한 세외 부담은 “(정권) 생존을 위한 원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중앙정부가 세외 부담에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겉으로는 세외 부담을 부정부패의 하나라며 척결 대상이라고 강조하지만 주민들과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각종 세외 부담 요구는 더 증가하는 추세라는 겁니다.
김 위원장의 지난 2021년 8차 당대회 폐막일 연설입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세외 부담 행위와 같은 온갖 범죄 행위들을 견결히 억제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한국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임을출 부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후 북한 경제 내구성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중앙에서는 세외 부담 척결을 내걸면서도 사회적 과제를 계속 부과, 하부 말단 단위의 간부들은 중앙의 지시를 명분 삼아 주민들에게 세외 부담을 지속적으로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 출신 리정호 씨는 “민생보다 핵·미사일 개발에 국가 재원을 계속 허비해 당과 기관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독재자가 하라는 것은 많은데 내각에는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누기를 합니다. 내각을 ‘나누기 내각’이라고 했죠. 모든 기관과 기업소, 성, 중앙기관, 도에다가 다 분담해 줍니다. 너희는 시멘트 얼마를 갖다 바치라. 이런 식이죠”
리 씨는 “김정일도 과거 세외 부담을 반국가적 반당 행위라며 근절을 지시했지만 1년 뒤 또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며 “결국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국가의 착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경제 시스템 자체가 실패했습니다. 제도, 정치 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중국을 보세요. 중국은 개인에게 사유재산권과 경제활동을 보장해 줬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개인이 자기 수입이 있고 세금을 낼 돈이 있어요. 그러나 북한은 월급을 0.5 달러도 되지 않는 것을 주면서 몇 배, 몇십 배로 착취합니다. 근데 어떻게 세금을 낼 수 있어요? 세금을 낼 돈이 없기 때문에 세금 제도를 없앤 거죠.”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결국 정부에 돈이 없는 게 문제”라며 정치적으로는 어렵지만 “간단한 해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일부 자산을 민간에 매각해 민영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re is a fairly simple solution, but politically difficult solution. The solution for the state at this point is to sell some of its assets. Not all of them. It would say is privatized. It's basically what China has been doing for 30 years.”
브라운 교수는 이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30년 동안 해 온 것이라며 “중국은 국가의 토지와 건물, 열차 등을 매각해 정부가 성공을 위한 강력한 기반을 닦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의 자산이 축적되면 그 돈으로 국가 기관 일꾼들의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고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해 뇌물 등 부정부패를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기존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의 경제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One, first of all, let's never forget there is no data in DPRK. The North Korean state itself does not know anything about its economic status. They don't know the state of their economy. They don't know how the flux of money go from the people level to the state level.”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에는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국가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경제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돈이 주민에서 국가로, 지역에서 중앙으로 어떻게 이동하는지조차 모른다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이런 기본적 역량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앞서 8일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도 북한의 세외 부담 문제를 지적하며 “세외 부담의 끊임없는 적용은 국가가 국민의 복지보다 정권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무역을 통해 갑자기 훨씬 더 많은 수입 등을 창출하지 않는 한 “세외 부담은 국가의 약탈적 수입 구조의 고착화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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