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이 강제 북송된 탈북민을 강제 노동에 동원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가발과 인조 속눈썹 같은 제품이 중국산으로 둔갑해 국제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29일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과 북한의 강제노동 사이의 연결 고리를 파헤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탈북민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북중 접경 지역인 함경북도 회령시 소재 전거리 12호 교화소의 사례를 중심으로 북한 구금시설 내에서 광범위하고 장기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강제 노동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들은 전거리 교화소 같은 구금 시설에 수용돼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생산한 제품은 중국으로 수출돼 ‘중국산’으로 둔갑, 글로벌 공급망에서 유통되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강제 노동을 통해 얻은 수익은 북한 정권의 군비 확장과 억압적 체제 유지에 사용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지적입니다.
보고서는 “북한은 신규 법률과 기존 형법 내 처벌 조항을 강화해 자국민에 대한 박해와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다”면서 “비법(불법) 월경, 종교 활동, 외국 콘텐츠 소비, 외화 사용, 한국으로의 탈북 시도 등이 불법으로 규정되며, 이로 인해 늘어난 수감자들은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 수감 시설에서 수출용 제품 생산을 위한 노예 노동에 동원되며, 북한의 경제구조를 떠받치는 주요 노동력으로 활용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산 제품 중국산으로 둔갑”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 허가를 받은 북한의 국영 무역회사들은 라선경제특구를 통해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나 생산 하청 계약을 맺고, 전거리 교화소에 수출용 가발과 인조 속눈썹, 가방 및 의류 생산을 위탁합니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는 라선경제특구를 통해 전거리 교화소에 전달됩니다.
수감자들의 강제 노동을 통해 제작된 완제품은 중국의 국외 외주 가공무역 제품으로 둔갑해 ‘중국산’으로 원산지가 세탁돼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됩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중국에 가장 많은 가발을 수출하는 국가는 북한입니다.
VOA가 해관총서의 ‘북중 무역세부 자료’를 살펴본 결과 북한은 지난달 중국에 가발과 속눈썹 등 인조 모발 제품 약 161t 분량, 총 1천152만 달러어치를 수출했습니다.
2위인 미얀마 44만8천 달러의 25배가 넘는 액수로, 북한은 중국의 가발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경제적 이익 위해 북중 공조∙∙∙반인도적 범죄 자행”
보고서는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젊은 여성이라면서 이는 “해당 제품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신체 조건과 정교한 수작업 능력을 가진 노동력의 선별과 성별에 따른 표적화가 이루어짐을 시사한다”면서 “교화소로의 이송 과정에서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과 강제 낙태, 구타와 불법 처형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벌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수감자의 노예 노동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중국은 생산비 절감과 안정적 양질의 제품 공급의 이점을 누린다”며 “경제적 이득 추구를 목적으로 북중 간 공조를 통해 자행되는 재중 북한 여성 체포, 국경 간 이송 및 수감자 강제 노동을 위한 협력은 노예 무역 또는 국가 차원의 인신매매의 요소를 내포한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또 “사회안전성이 관리하는 전거리 교화소에서는 도주자 공개 처형 등 공포 통제를 통해 ‘노예화’를 자행한다”며 “수감자들은 수출품 생산 할당량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 최대 20시간의 노동에 동원되며, 부족한 식량과 열악한 위생, 고문 등에 시달린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탓에 전거리 교화소 수감자는 연간 1천 명당 292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신규 수감자의 지속적인 유입을 통해 노동력 보충이 계속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각국 정부는 북한의 강제 노동과 반인도 범죄를 통해 생산된 제품이 국제시장에 유입되지 않도록 협력해야 한다”며 “각국이 북한을 강제노동 고위험 국가로 분류하고, 북한 교화소 강제 노동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는 ‘중국산’ 상품의 유통 금지와 조사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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