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미국의 로버트 프랜시스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오레건주 예비선거에서 유진 맥카시 상원의원에게 패배합니다.
반전주의자이자 진보 색채가 강한 유진 맥카시가 일찌감치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유세에 뛰어든 반면에 로버트는 그해 3월 뒤늦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역동적인 선거 운동으로 초반의 열세를 뒤집습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지지 상승엔 흑인과 라틴계 등 소수민족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 해 6월5일 로버트 케네디는 매우 중요한 캘리포니아 예비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로버트 케네디는 형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처럼 암살당하고 맙니다. 1968년 오늘 오레건주 예비 선거가 치러진 지 1주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워싱턴을 향한 그의 운구 차가 지나는 길엔 백인은 물론이고 수많은 흑인과 소수민족들이 나와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습니다.
그는 늘 형인 존 에프 케네디의 그늘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유머와 지도력을 갖춘 뛰어난 정치인이었습니다.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죽음은 수많은 미국시민들을 충격에 빠지게 합니다.
암살범 시르한은 현장에서 체포됐고 당국은 시르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리지만 시르한은 이후 자신의 범행을 줄곧 부인합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처럼 로버트 케네디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역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988년,
노태우 한국 대통령이 야권 3당의 총재들과 전격 회동합니다.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 등 이른바 3김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야권은 한 달 전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제 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쳐 단죄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이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후에 13대 국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청문회 증언대에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결국 1995년 군사반란 수괴혐의로 구속수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