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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10월 9일


1967년 10월 9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라는 말을 남긴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39살을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이 끄던 중 하루 전 볼리비아군에 의해 체포됐다가 결국 오늘, 사살 당한 것이었습니다.

1928년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데랄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로, 체는 의과 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남미 여행을 갔다가 가난에 시달리는 민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체는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은 혁명을 일으키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 1955년 쿠바로 건너가게 됩니다.

체는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만나게 되고 둘은 제국주의의 억압으로부터 남아메리카 민중을 해방시켜야 한다는데 절대적으로 공감, 1959년 쿠바 혁명을 일으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체는 혁명을 일으킨 지도자로 남기를 거부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콩고로 가 또다시 혁명에 힘을 쏟았고, 혁명의 전파를 위해 볼리비아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1967년 10월 8일, 체는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볼리비아 군과 싸우던 중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고, 결국 볼리비아 군에 체포 당합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967년 오늘, 볼리비아 정부의 명령으로 체는 사살당해, 39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1983년 10월 9일 오늘

버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아웅산 국립 묘소에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발생해 한국인 21명과 버마인 3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터진 폭발물로 인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이범석 외무부 장관과, 서석주 부총리,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한 국무위원과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사망하고 이기백 합참의장 등 1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서남아시아와 대 양주 6개국 순방 일정 가운데 첫 방문지로 아웅산 국립묘지에 도착하기로 돼있었지만 도착 시간이 늦어져 화를 면하게 된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즉시 모든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합니다.

폭발 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은 후에 북한 정찰 국 소속 특공대원들로 밝혀집니다.

공작원 세 명중 한 명은 즉각 사살됐고, 다른 한 명은 사형 집행 됐으며 유일한 생존자였던 강민철은 2008 년 버마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버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24년 동안 북한과 단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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