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중국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결국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됐군요?
답) 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의 하나인 제17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가 나흘 간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18일) 베이징의 징시호텔에서 폐막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시진핑(习近平)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됐다고 중국 중앙TV 등 관영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공산당 서열 6위인 시진핑 부주석은 차기 지도자 자리를 승계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오름으로써 차기 지도자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고, 현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후계로서 최고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로써 큰 이변이 없는 한 시 부주석은 내년 3월 열리는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2년 뒤인 2012년 10월의 제18차 공산당 대회에서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을 잇는 제5세대 지도자로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어 시 부주석은 2013년 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국가주석직에도 오르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시죠.
답)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1953년생으로 올해 57살이며 베이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 부주석의 부친은 시중쉰 전 국무원 부총리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으로 광동성 당 서기로 있을 때 당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에게 경제특구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시 부주석은 혁명원로 자제 중 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을 가리키는 태자당의 일원으로 분류되고 있고 태자당의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시진핑 부주석은 태자당에 속하긴 하지만 어린시절 부친이 문화대혁명 때 사인방에게 탄압을 받아 농촌생활을 한 탓에 문화대혁명 기간인 1969년 오지인 산시성 옌안시 량자허촌으로 쫓겨 내려가 농민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 부주석은 이어 문화대혁명 말기였던 1975년 부친의 복권과 함께 7년간의 농촌생활을 마무리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칭화대학 화학공정과에 진학했고 인문사회과학원에서 마르크스 이론사상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에는 국무원 판공청에서 겅비아오 부총리 비서로 배치돼 일하다 1982년부터 베이징을 벗어나 20 여년 동안 지방만을 돌며 근무해 왔습니다.
한편 시 부주석은 푸젠성에서 주로 활약하면서 유명한 전통가요 가수로 인민해방군 가무단장인 펑리위안을 만나 결혼했고, 외동딸인 시밍쩌는 미국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중국 지방의 성장과 당 서기를 잇달아 지내며 성장 가도를 달렸죠?
답) 네. 시진핑 부주석은 40대 후반부터 샤먼시 부시장, 푸젠성 성장, 저장성 성장과 공산당 서기를 지내면서 실적을 쌓아 차세대 주자로 꼽히기 시작했습니다. 푸젠성 성장으로 일하면서 대만 자본을 유치하는 데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또 2002년 저장성 당서기가 된 후 5년 만에 저장성을 중국에서 민간기업이 가장 발전한 성으로 키웠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천량위 상하이 당서기가 비리 혐의로 축출되면서 2007년 3월 상하이 당서기로 임명됐습니다. 시 부주석은 이어 2007년 10월 열린 제17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라이벌인 리커창 전 랴오닝성 당 서기를 제치고 공산당 서열 6위의 국가부주석 자리에 선출됐습니다. 현재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교육기관인 중앙당교 교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문)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이처럼 차기 지도자까지 오르게 된 데는 중국 내 계파들의 지지도 한 배경이 된 것 같은데요?
답) 네.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자제력과 자기관리가 뛰어난 대기만성형 정치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정치적 후광과 개인적 능력을 모두 갖춘 점이 중앙정치 무대에서 위상이 부각된 배경으로 꼽힙니다. 시 부주석은 태자당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지원해 주는 계파가 없다는 평을 들었던 점이 오히려 상하이방과 공산주의청년단 등 모든 계파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부각되며 후계자 후보로 빠르게 떠올랐습니다. 또한 시 부주석은 태자당 출신이 배경이 돼 공산당 원로들을 잘 대우하고 군 간부들과도 친밀하게 지낸 것이 입신의 배경이 됐다는 평도 있습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태두로 하는 이른바 상하이방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고, 장쩌민 전 주석은 시 부주석의 정치적 후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 부주석의 성격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붙임성이 좋고, 자신이 맡은 일은 묵묵히 실행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시진핑 부주석은 남북한과 모두 고루 인연을 맺고 있다면서요?
답) 네.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남북한 문제에 두루 밝은데요, 시 부주석은 지난 2008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부주석 직에 오른 뒤 석 달 만에 첫 해외순방 국가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상견례를 했습니다. 또 시 부주석은 지난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 때 김 위원장과 후 주석 간 정상회담에 배석했습니다.
또한 시 부주석은 지난 2005년 저쟝(浙江)성 당서기 시절에 한국을 방문했었는데요, 2008년 3월 국가부주석에 취임한 뒤 지난 해 12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바 있습니다.
문) 이번 중국 공산당 제17기 5중 전회는 내년부터 시작될 12차 5개년 계획의 기본노선을 확정했다는데,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답) 중국을 이끌어가는 공산당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등 370여명은 경제사회 분야에서 내년부터 5년 동안 시행될 제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의 기본 노선을 확정했습니다. 12차 5개년 계획은 내수 진작과 민생 보장을 양대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위원들은 오늘 보고서에서 향후 5년이 안정적으로 번영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모든 면에서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규정하고 내수 확대로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경제 발전을 보장하고 거시경제 조절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신재생에너지, 신재료, 정보기술(IT), 바이오•신약, 환경보호, 우주과학, 해양, 첨단 제조업, 하이테크 서비스 산업 등 9개 분야 전략산업과 동부 연안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륙 지역에 모두 4조 위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 이번 회의에서는 특히 중국의 앞으로의 경제발전의 기조로 이른바 ‘포용성 성장’이라는 개념을 정했다면서요?
답) 네. 이번 5중전회에서는 제12차 5개년 계획의 기본방침으로 이른바 ‘포용성 성장’이 제기됐습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달 16일 포용성 성장을 언급하고 이번 5중 전회에서도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중국 관영 언론들은 지난 30여 년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심화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 그리고 지역계층 갈등 등으로 초래된 사회불안을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경제 성과의 과실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게 포용성 성장의 기본 개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보고서는 민생을 개선하는 한편, 지속 가능하고 중국 실정에 맞도록 농촌과 도시에서 기초적 공공 서비스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완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분배 측면도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보고서는 농촌과 도시 지역에서 모두 사회보장제도 강화와 의료 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고용 환경 개선과 합리적인 수입분배 조정을 천명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한편 오늘 보고서에서 정치개혁 분야와 관련해서는 공산당의 영도 아래 인민이 주인이 되고 법에 따라 통치하는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들어가는 데 그쳤습니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의 하나인 제17차 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됐습니다. 이로써 시진핑 부주석은 2년 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이어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베이징 현지를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