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청년이 치열한 경쟁과 낯선 한국문화에 적응하며 겪는 좌절과 분노, 그리고 고독의 스토리.
미국 트라이베카 영화제 사무국은 지난 28일 영화 ‘무산일기’를 제작한 한국의 박정범 감독을 올해의 신인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매년 열리는 트로이베카 영화제는 유명 영화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등이 2001년 공동 창립한 영화제입니다. 이 영화제는 특히 인물의 내면을 참신하고 독특하게 그려내는 신인 감독들의 등용문과 같은 영화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영화제는18만 5천 달러의 상금을 놓고 40개 나라 100 여 개 영화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트라이베카 영화제 사무국은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을 신인 감독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며, 부상으로 상금 2만 5천 달러를 수여하고 차기 작품 제작에 5만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무산일기’는 박정범 감독이 대학시절 만나 결국 암으로 숨진 탈북자 전승철 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으로, 전 씨가 낯선 한국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목숨 내걸고 여기까지 와서…
주인공인 탈북자는 새로운 한국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사회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이 사회 초년생을 차갑게 맞이하고,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합니다.
극중 “북한에서 왔단 말 하지마.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만 해. 살아남아야 할 것 아냐.”
북한 출신이란 사실까지 숨기며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철거 현장과 불야성을 이루는 현란한 밤거리 풍경은 주인공의 무너지는 속마음을 강렬하게 대변해 줍니다.
박정범 감독은 북한 도시 ‘무산’은 푸른 산이 무성하다는 의미지만 현재는 민둥산만 무성한 북한. 그런 황폐한 땅을 떠나 꿈을 갖고 한국으로 왔지만 역시 ‘무산계급’으로 살아가는 탈북자 친구를 통해 인간의 내면 흐름과 정체성 혼란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박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한국 내 탈북자들로부터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분들은 오히려 저한테 왜 이런 영화를 찍어야 하느냐고. 제 시나리오를 다 보여줬거든요. 많이 혼났습니다. 왜냐. 그 분들은 밝은 이미지와 그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또 사실 대다수의 탈북자 분들이 이렇게 살지는 않고요. 더 열심히 삶에 대해 열정을 가진 분들이 거의 대다수거든요. 근데 그렇게 열심히 뭔가 살아남으려고 하는데 왜 네가 찬물을 끼얹느냐?”
박 감독은 탈북자를 이용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며, 일반 사회에서도 잘사는 중, 상위층과 가난한 빈민층이 있듯이, 가난한 탈북자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박 감독은 모든 탈북자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며, 북한 정권이 이 영화를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해 봤습니다. 이 영화가 만약 북한에 들어 간다면 어떨까?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겠다. ‘남한에 가봤자 별거 없다’란 생각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산일기’는 탈북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지구촌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하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무산일기’는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과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모로코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 본상인 타이거상,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의 삶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가 미국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탈북자를 통해 소외된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