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전 국가원수가 오랜 철권통치 끝에 시민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고 있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가다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일 밤 9시쯤. 피살 되기 직전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침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리비아와 맺어 온 각별한 인연, 그리고 반미 반 서방을 기치로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정권의 공통점 때문에 가다피의 최후에 대한 입장 표명에 신중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관측입니다.
북한은 과거 2006년 12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사형 당했을 때도 18일이 지난 뒤에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처형 사실을 간단히 언급했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최진욱 박사입니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나라 또 반미 반 서방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던 나라에서 독재자가 국민들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겠죠.”
북한은 고 김일성 주석 생전인 지난 1974년 리비아와 수교한 이후 1982년 친선협조 동맹조약을, 이어 1984년엔 군사협력의정서를 맺으며 우호관계를 강화해 나갔습니다.
또 반미 기치를 내건 독재체제이고 권력의 부자세습을 추진하는 등 닮은 꼴 정권으로 서로를 맹방으로 우대해 왔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은 그동안 탄도미사일 등 무기를 리비아에 수출해 왔고 아프리카로의 무기 수출 통로로 리비아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리비아가 과거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을 때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도 받아왔습니다.
특히 리비아가 내전 상태에 들어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군이 가다피를 압박하기 위해 벌인 리비아 공습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맹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친구였던 가다피의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중동 민주화 바람 차단에 혈안이 됐던 북한 당국의 주민 통제는 한층 강화될 전망입니다. 북한 정권의 위기감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관측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입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에선 상당한 심리적 위축감이 올 것이고 권력 엘리트들도 위축감이 확대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통일연구원 최진욱 박사는 북한이 가다피 정권 붕괴가 서방의 사주를 받은 반역자들의 소행이라며 철저한 정보 통제와 함께 오히려 체제를 결속하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가다피의 몰락으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더 집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다피는 지난 2003년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이 요구한 검증방안을 수용했었습니다
북한은 가다피 정권 붕괴가 서방의 속임수에 넘어가 핵을 포기한 게 화근이었다고 보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앞서 지난 3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속여 무장해제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박사입니다.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견지할 수 있는 핵심적인 레버리지인 핵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권이 붕괴됐다는 인식을 북한이 가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뿐만 아니라 핵무기에 대한 집착도 단기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 그런 측면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리비아 사태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북 핵 6자회담 재개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