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09년 북한 억류됐던 유나 리 2. “가족편지, 세상과의 유일한 창”

문) 그런 어려운 상황 중에 평양에 주재하는 스웨덴 대사와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내부에서 보는 첫 서방, 바깥 사람이었을 것이고, 때문에 위로가 크지 않았을까요?

답) 그 때 위안이란 말로 표현을 못하죠. 처음에 감히 상상도 못했던, 누군가가 와서 저희를 봐 줄 거라는. 그 분이 미국을 대신해서 와 주신 분이잖아요. 미국하고 북한이 국교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저한테 뭐가 필요한지,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라, 책을 보내 주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냥 채 10분도 안되는 만남이었는데 그 분하고 떨어지기가 너무 싫었어요. 그 분하고 만나고 오면 아, 앞으로 한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겠다, 물론 그게 이틀도 안 갔지만, 누군가 우리를 봐 주고 있구나, 누군가가 우리 상황을 알고 있구나라는 게 굉장히 위안이 됐었어요.

문) 예. 10분씩 밖에 안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작은 희망은 느끼셨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그러면 그 때 스웨덴 대사를 통해서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미국 전역에서 북한에 억류된 두 여기자의 석방을 촉구하는 움직임들이 크게 일어났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답) 스웨덴 대사는 저희한테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됐습니다. 그냥 저희가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하러 오시는 거였구요. 또 가족한테 저희 상황을 전달하시려고 저희를 만나시는 거였구요. 저에게는 진전이 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것이다 라고 얘길했죠. 그런데 북한에서도 미국의 반응이 굉장히 천천히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쪽에서도 조바심을 내면서 네가 좀 열심히 애걸해야 되지 않느냐, 네가 집에 가고 싶으면, 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가 느끼기엔 급한 게 아니라 절차를 잘 밟으면서 가지 않습니까? 그걸 설명드렸죠. 이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미국에서 무슨 문제를 하나 해결하려면 회의에 들어가고 또 그 회의가 다른 윗 분한테 가서 또 회의에 들어가는 절차를 밟아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시간이 걸리는 거지, 우리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라고 몇 번 말씀드렸던 게 기억이 나요. 그리고 미국에서 저희를 위해서 촛불 집회를 하고 사람들이 저희 구명운동을 했던 것은 가족들이 보내 준 편지로 알았습니다.

문) 그렇군요. 지금 가족한테서 받은 편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게 연락이 된 시점은 언제였습니까?

답) 처음 남편한테 받은 편지는 아마 세 줄짜리 편지였어요. 그게 3월 말이었나요, 뭐 4월 초였나, 그랬는데 남편이 그걸 쓰게 될 지 몰랐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편지가 짧았다고. 두 번째 받은 건 아마 4월 말부터 정기적으로 편지가 왔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6월 달 재판 끝나서는 일주일에 두 번도 오고 그랬습니다. 아마도 스웨덴 대사는 오는 즉시, 이메일을 받는 즉시 그걸 다 일일이 프린트 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매일 전해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북한 쪽에서는 그걸 모아뒀다가 한번에 주신 것 같아요.

문) 예. 그러니까 억류된 지 한 달 남짓 지나서 가족과의 연락이 시작됐는데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큰 위안이 됐겠죠, 물론.

답) 네. 아무런 사람과의 교통이 없고 혼자 있어야 되니까요. 독방에. 그것이 유일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던 것 같아요.

문) 특히 사랑하는 딸, 당시 4살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딸과의 소통은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답) 아이한테는 저도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었고 남편도 아이한테는 엄마가 일을 가서, 먼 곳에 가서 아직 오지 못한다고 얘길 했어요. 아이랑은 전화통화를 두 번 했었는데 엄마가 너무 외지에 와 있어서 전화가 없어서 전화를 자주 못한다고 말을 했었어요.

문) 예. 그 말씀을 이제 조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욱 들구요. 의약품이라든지 필요한 물건들을 가족들이 챙겨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편께서 그 중에서 공책을 보내줬다고 제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셨을 것이고 거기에 그걸 다 쏟아내셨을 것 같은데 어떤 내용들이 담겼습니까?

답) 일반적으로 제가 하루 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시간대 별로 해서 글을 썼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아침에 상황이 어떻다, 그 다음에 밥은 뭘 먹었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 정신 상황이. 지금은 스테이블 하다, (안정적이다) 아니면 지금은 굉장히 기복이 심하다, 그런 거를 자세하게 썼었어요.

문) 그렇게 하루 하루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 유일한 낙 중의 하나였을 것 같은데 그걸 또 검열당하진 않았습니까?

답) 제 생각엔 누군가가 와서 봤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혹시 로라가 같은 빌딩에 있는지, 저희가 첫 3일을 빼놓고는 떨어져 있었거든요, 집에 올 때까지. 혹은 로라가 같은 빌딩에 있는지 궁금해서, 로라가 있으면 거기에 통역자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저 심문하시는 분한테 이 단어가 영어로 생각이 안난다, 이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가르쳐 달라고 그랬더니 어디가서 그 단어를 적어 오셨어요. 제가 그 단어가 뭔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 영어 필체가 영어를 잘하시는 사람의 필체였어요. 그래서 아, 로라가 여기 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죠.

문) 로라 링씨 얘길 지금 하셨는데요. 그 분의 경우엔 유명한 방송인인 리사 링, 언니죠?, 이런 인맥을 총동원해서 먼저 가족과 연락이 닿았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똑같이 억류생활을 했지만 혹시 두 분이 좀 다른 경험을 하셨거나, 나오셔서 두 분이 얘기하시면서 느꼈던 억류생활에 차이점은 없는 지도 궁금합니다.

답) 사실 로라하고 저하고 억류생활에 대해서 집에 온 후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로라는 성격이 굉장히 외향적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게 하는 그런 재능이 있어요. 그래서 있으면서도 간수들이 친구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반대로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거기다가 제가 한국말을 하기 때문에, 또 왜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지, 제가 간수들하고 얘길 하면 그 간수들이 혼나기 때문에 저는 또 간수들하고 얘길 안 하고 조심하고 있었죠. 그거 빼놓고는 잘 모르겠어요. 저희가 아무리 지금 상황이 감사하고 좋고 그래도 그 과거를 생각하는 건 3년이 지난 지금도 좀 힘드네요.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 얘기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문) 간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수 있었으나 아마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겠죠. 유나 리씨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읽으면서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저도 느꼈는데, 자신을 억류했던 사람들이나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심문하고 판결했던 사람들, 그 심문했던 사람은 ‘이 씨’라고, ‘미스터 리’라고 표현을 하셨었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또 원한, 이런 사실을 잘 발견하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연민이랄까, 아니면 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 주셨었는데 그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답) 처음에는 무섭고 밉고 그랬죠, 그 분들이. 저한테 협박을 하고 집에 못 간다고 그러고, 자식을 못 본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한 두 달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까 어떤 마음이 드냐하면 아, 저분도 직업이구나, 나를 심문하는 게 그 사람의 직업이고 우리가 참 슬픈 상황에 빠져있는 거구나, 왜냐하면 자기하고 관계없이 이념이 다른 세계에서 국가가 시키는대로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물론 그 분이 거기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있겠죠. 그런데 직업으로 저를 심문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이 이념만 없으면, 이 이데올로지만 틀리지 않으면 저분하고 나하고 이렇게 심문자와 심문을 받는 자로 앉아있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뭐 결국엔 끝에 가서는 그 분도 저를 인간적으로, 물론 그 분의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인간적으로 안 됐다고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기도 자식이 있고, 또 다 큰 딸이 있고 하니까. 하루는 넌 왜 그런 일을 해서 여기까지 끌려 왔냐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유나 리 기자와의 인터뷰,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