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탈북민 150여 명이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교류 프로그램 연수를 받았다고 미 정부 기구가 밝힌 가운데, 미국 대학원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공부하는 탈북 청년들이 VOA에 소회를 밝혔습니다. 공부를 통해 국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북한 재건에 대한 의무감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미국공공외교자문위원회(ACPD)’가 최근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 내 탈북민 150여 명이 교류 프로그램들을 통해 미국을 방문했다고 밝혔습니다.
탈북민들이 미국 사회와 가치를 이해하고 영어와 취업 역량을 돕기 위한 공공외교 차원에서 주한 미국대사관이 풀브라이트와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VLP)’, ‘대학생 연수 프로그램(WEST)’ 등 교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겁니다.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1946년 창설된 세계적인 학술 교류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160개국 내 학생과 학자, 예술가, 교사,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무부는 지난 74년 동안 전 세계 39만 명이 풀브라이트의 장학 혜택을 받았다며, 이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국가 간 신뢰와 상호 이해 증진, 국제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미교육위원단(풀브라이트 위원단)을 통해 2018년에 최초로 탈북 청년 5명에 이어 지난해 4명을 선발했으며, 이들은 현재 미국의 대학원에서 석사 또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5명 중 한 명으로 미 동부의 한 대학에서 갈등분석해결학 박사 과정을 공부 중인 이성주 씨는 5일 VOA에, 풀브라이트 장학 혜택은 꿈을 펼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주 씨]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서 여기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기회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공부가 끝나면 앞으로 책임감이라든지 고향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은 미 정부와 상대국이 공동으로 재정을 후원하고 있으며, 대상에 따라 최대 2년 간 7만 달러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왕복항공료와 건강보험도 포함돼 있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미 서부의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재학 중인 마이클 최 씨는 5일 VOA에, 꿈을 이뤄가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최] “무조건 이것은 기회다. 조금만 노력할 수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면 얻을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아요. 특히 경제와 군사력 등에서 여전히 전 세계 패권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고, 수업에서 케이스 스터디도 많이 하고, 전후좌우를 보면 백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와 있잖아요. 탈북자로서 한 번 태어나서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값진 경험이고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풀브라이트 탈북민 장학생 2기로 지난해 9월부터 미 서부의 한 대학에서 정치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세라 씨는 풀브라이트 명성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세라 씨] “일단 정부 간 뽑은 장학생이라 사람들이 믿어주는 것 같아요. 신뢰하는. 저 개인은 몰라도 풀브라이트라는 명성을 믿고 신뢰하고 서포트해 주니까 그런 부분이 안정감이 있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기관이 있잖아요. 어드바이저가 있으니까. 그런 도움을 받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탈북 청년들은 풀브라이트 외에도 미국 대학에서 1~2학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글로벌 교환학생 프로그램(UGARD), 미국에서 인턴십·어학연수·여행을 모두 경험하는 WEST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는 물론 미국 문화와 민주주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특히 수 십 명의 탈북 대학생들이 이수한 WEST 프로그램의 경우 한국 대학생들은 영어 실용평가 시험인 TOEIC 850점 이상을 받아야 자격이 되지만, 탈북민들에게는 기준을 다소 낮춰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국무부가 1940년부터 직접 운영하는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VLP)’를 통해 한국에서 인권 운동가, 언론인, 교사 등으로 활동하는 탈북민 수 십 명이 미국에서 2~3주 과정의 연수를 받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교육, 정부와 지역단체, 기업 방문, 연수생들이 요구하는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무부는 연간 5천 명, 지금까지 20만 명이 이 프로그램 연수를 받았으며, 전 세계 전현직 국가 지도자 500명이 포함돼 있다고 웹사이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성주 씨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의 가치뿐 아니라 공공외교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주] “미국 공공외교의 확장 차원에서 탈북민 중 우수한 학생들을 발굴해서 이들이 앞으로 다리 역할, 나아가서 북한이 앞으로 민주화가 되고 바뀌면 이런 사람들이 북한에 올라가서 자기 고향을 발전시키고, 북한이 중국처럼 가는 게 아니라, 자유 진영에 편입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군들이 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마이클 최 씨는 이런 배움의 기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북한에서 벤처기업을 일구는 게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이클 최] “이제는 당장 미국이든 중국이든 어느 글로벌 시장에도 내일이라도 뛰어들어 최소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졸업 후 기회가 되면 벤처 캐피탈 쪽에서 일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저만의 벤처 캐피탈을 만들어서 제2의 삼성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나오도록 투자도 하고 동시에 컨설팅에 공헌해서 요즘 뜨는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기업)들이 북한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데 먼저 나온 사람으로서 기여하고 싶어요.”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길 원하는 후배 탈북 청소년들에게는, 너무 큰 계획보다,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고 성적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녹취: 박세라 씨]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죠 먼저. 한국에서 공부하든, 미국이든, 유럽에 가든 앞으로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읽어야 되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큰 계획을 세워 토익을 7~8백점 맞겠다는 계획보다, 오늘 영어 단어 10개를 반드시 외우겠다! 꾸준히 한 달만 하면 확 늘 수 있다는 경험을 저는 했어요. 그런 작은 것부터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