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이산가족 상봉 준비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 창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또 앞으로는 이산가족 논의에 탈북난민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T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 단체 관계자들은 미-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공식 체계를 통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산가족USA’의 폴 리 대표는 28일 워싱턴의 민간단체 전미북한위원회(NCNK)가 주최한 ‘70년의 이별, 미-북 이산가족’ 화상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 폴 리 대표] “Because Korean Americans are such a small minority in the United States, unlike in South Korea, there is no official government mechanism to track and trace Korean American dividing families.”
미국에서 한인은 소수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달리 이산가족 현황 등을 파악하고 다루는 공식적인 정부 체계가 없다는 겁니다.
폴 리 대표는 재미 한인 이산가족 규모를 1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지만, 이는 2000년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지금은 이보다 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전미북한위원회를 통해 ‘미-북 이산가족’보고서를 발표한 폴 리 대표는 무엇보다 이산가족 간 생사확인이 절실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 폴 리 대표] “What I hear the most from the divided family members we talk to is that number one thing they want to do is to know or ascertain the status of their relatives in North Korea. Now whether they're dead or alive, what happened to them. So for me I think that should be the number one priority, and that is very feasible along with letters video messages recording stories.”
자신이 이야기를 나눈 이산가족들은 북한에 있는 친척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을 가장 바랐다는 겁니다.
폴 리 대표는 물리적 상봉이 당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신 작성이나 영상 메시지 기록과 함께 이런 생사확인 작업은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미 의회에 한인 이산가족 문제를 처음 알렸던 이차희 재미한인 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은 이산가족 문제를
공론화하기 어려웠던 한인 1세대들의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녹취 : 이차희 사무총장]“It took so long for the first generation before this started working with the mainstream of America, because we had had this cold war mentality. And we didn't want our government to know that we had our family members in North Korea. Another problem was that we had a language and cultural barrier, we didn't know where to start.”
‘냉전 시대’의 영향을 받은 한인 1세대는 자신의 가족이 북한에 있다는 것을 정부가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도 있었다는 겁니다.
이차희 사무총장은 이런 어려움으로 1990년 의회 등 미 주류사회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루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당시 공화당의 마크 커크 상원의원 등과 협력하며 2008년과 2009년 이산가족 지원 관련 법안이 채택되도록 했고, 정부 등과 함께 미-북 이산가족 상봉 채널을 열기 위한 노력을 벌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폴 리 대표는 앞으로는 한국전으로 인한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미국 내 탈북민도 이산가족 범주에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나 영상 등으로 기록해 훗날 북한의 친지들이 그 메시지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