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22일 수도 트리폴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쌓였습니다. 이 날은 리비아 국민들이 42년간 계속된 가다피 독재를 몰아내기 위해 8개월간 봉기한 리비아 혁명의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이날 리비아와 튀니스 국경지대인 라스 아자르에서는 리비아 국기로 장식된 차량에 가족을 태우고 다시 리비아로 돌아가는 피난민들의 행렬이 꼬리를 이었습니다. 국가과도위원회가 다시 국기로 지정한 붉은 색과 초록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이뤄진 리비아 국기가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몇달간 계속된 전투를 포함해 리비아 내전의 종식은 이제부터 새로운 국가 건설이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리비아 국민들은 이제부터 선거를 실시하고, 새 헌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가다피의 사망 경위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다피는 지난 20일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시민군의 추격을 받은 뒤 사망했습니다. 이와관련 국제사회에서는 가다피의 사망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보도를 종합할 때 가다피는 자동차로 이동하다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전투기의 공습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시민군 병사들이 하수도에 숨어있는 가다피를 발견했습니다. 공개된 비디오 화면에 따르면 당시 가다피는 부상을 입긴했으나 살아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가다피가 현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가다피는 시민군 병사에 의해 현장에서 즉결 처형이 됐거나 구타를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후 가다피의 시신은 중부 도시 미스라타의 한 정육점으로 옮겨졌습니다. 시민군들은 정육점 냉동창고에 있는 가다피의 시신을 쳐다 보는 것은 물론 시신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또 시민군 지지자들은 미스라타에서 가다피의 부서진 동상과 관련된 자료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연 압둘 사센 알하다드씨는 이번 전시회가 리비아에서 일당독재 시대가 끝났으며 리비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가다파의 변덕스럽고 잔인한 1인 독재는 지난 1969년 군부 쿠데타로 시작됐습니니다. 그리고 지난 8월 가다피가 시민들의 봉기에 쫒겨 수도 트리폴리에서 도망치면서 부터 비로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지난 7개월간 전투기로 공습을 가해 가다피군을 무력화 시키고 시민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나토군은 가다피가 사망한 지난 20일 시르테에서 11대의 무장차량들에 대해 공습을 가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전투기는 21일 또다시 출격에 나섰지만 정찰 임무를 띈 것이 분명한 가운데 이날 폭탄은 장착하지 않았습니다. 당국자들은 나토군이 오는 10월31일을 기해 작전을 공식 종료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다피 사망으로 23일 리비아 전국은 안도와 환호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리비아 국민들은 지금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다피의 사망을 계기로 리비아 사회가 또다른 내전을 겪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전문가들은 가다피의 사망을 계기로 반 가다피 진영의 단결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랍언론은 가다피가 숨겨놓은 자산 규모가 2천억달러가 넘는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일간 ‘걸프뉴스’는 23일 리비아 과도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가다피가 예금과 부동산,그리고 금 등 전 세계에 2천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숨겨놨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