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미얀마 내 ‘카렌민족연합(KNU)’이 통제하는 지역이 미얀마 민주 세력의 집결지가 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이 KNU와 함께 군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인데요. ‘시사상식 ABC’ 오늘은 ‘카렌민족연합(KNU)’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KNU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카렌족의 광범위한 자치권을 요구하는 정치 조직입니다.
[음악: 카렌족 전통 음악]
카렌족은 에야워디 삼각주 지역과 양곤 지역 등 주로 미얀마 남부 지역에 살며 일부는 미얀마 동부 국경 지역에도 거주합니다.
카렌족 인구는 출처에 따라 다른데 현재 KNU 측은 약 800만 명에서 1천만 명 사이로 추산합니다.
카렌족은 19세기 영국에 정복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버마 왕조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한편 영국의 영향으로 카렌족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독교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카렌족과 버마족 사이 갈등은 태평양전쟁 기간 더 심각해졌습니다. 당시 일본 측에 가담한 버마인들이 영국을 지지한 카렌족을 대거 학살했던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버마 독립과정에서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립적인 카렌주를 세우기 위해 ‘소바우지(Saw Ba U Gyi)’를 지도부로 하는 정치조직인 KNU가 1947년 2월 설립됐습니다.
[녹취: KNU 관련 뉴스]
한편 KNU는 독립적인 카렌주 설립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49년 1월부터 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KNU는 무장투쟁 초기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를 거치면서 상황이 크게 반전돼 버마 정부군의 거센 공세 탓에 KNU는 점차 점령지를 잃어갔습니다.
특히 1995년 KNU 등 몇몇 반군 세력의 수도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마네플로’가, 다음엔 핵심 요새였던 ‘고무라’가 정부군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정부군 공세에 수많은 카렌족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난민이 돼 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녹취: KNU 관련 VOA 뉴스]
이후 KNU는 미얀마로 나라 이름을 바꾼 버마의 군사정권이 추진한 ‘전국평화협정(NCA)’에 참여했습니다. NCA는 미얀마 정부와 군,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 휴전 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다시 쿠데타가 나고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KNU는 더 군사정권과 협상하지 않고 민중 시위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네. ‘시사상식 ABC’, 오늘은 ‘KNU’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