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을 멈췄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남북관계 위기에도 개성공단만은 정상 가동됐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개성공단 10년의 역사를 이연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남북한 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은 10년 전인 2003년 6월, 1단계 착공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해 남북한 모두 이익을 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6월에 15개 한국 기업이 시범단지에 입주했고,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됐습니다.
[녹취: 방송보도]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첫 스테인레스 냄비가 오늘 저녁 우리 밥상에도 올랐습니다. 남한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손 잡고 만들어낸 첫 결실입니다.”
‘통일냄비’로 불린 이 냄비는 1천 세트가 판매 시작 1시간 만에 매진됐습니다.
이어 2005년에 18개였던 가동업체가 2007년에 65개, 2009년 117개 등으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후 정체되기 시작해 2011년에 123개를 기록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는 2004년 55 명을 시작으로, 2007년에 2만 명, 2009년에 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새로 입주하는 기업이 크게 줄면서 북한 근로자 수 증가도 둔화되는 양상을 보여, 지난 해 1월에야 5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는 5만3천 명 선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지난 2009년 이후 입주기업체 수와 북한 근로자 수가 별로 늘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생산액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2005년 1천5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생산액이 2007년 1억8천5백만 달러, 2010년 3억2천만 달러, 2012년 4억7천만 달러 등으로 계속 증가해 지난 2월 현재 누적생산액이 2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개성공단의 생산액이 꾸준히 증가한 것은 북한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 그래도 인원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 근로자들의 생산성, 기술이 향상되고, 그리고 처음보다는 열심히 하려는 의욕들이 합쳐져서 꾸준한 생산량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나 분석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개성공단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8년 들어 개성공단 내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하고, 공단에서 남측으로의 인력과 물자 통행시간을 제한하던 북한은 급기야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 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9개월 후 '12.1 조치'가 해제되면서 개성공단은 잠시 정상화되는 듯 했지만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녹취: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고귀한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류협력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한국 정부는 5.24 대북 제재 조치를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확대나 새로운 투자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공단 출입이 일시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긴장 속에서도 계속 정상적으로 가동됐습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서 개성공단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남북이 모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입주기업들은 이달 초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할 때도 공장 가동에 별다른 지장은 없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공단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기들을 여러 차례 무사히 지나온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에도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옥성석 개성공단 기업협회] “우리가 북한의 핵실험 연평도 천안함 때도 개성공단은 아무 영향이 없이 유지해왔기 때문에 주재원들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북한은 지난 달 27일 개성공단 입출경에 사용된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차단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하고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했습니다.
이후 8일에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를 취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4월 18일]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이어 북한은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제안한 당국간 실무회담 제의마저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국민 보호 차원에서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한국 측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은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사실상 잠정폐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지난 10년간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 온 개성공단의 폐쇄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남북한 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은 10년 전인 2003년 6월, 1단계 착공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해 남북한 모두 이익을 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6월에 15개 한국 기업이 시범단지에 입주했고,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됐습니다.
[녹취: 방송보도]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첫 스테인레스 냄비가 오늘 저녁 우리 밥상에도 올랐습니다. 남한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손 잡고 만들어낸 첫 결실입니다.”
‘통일냄비’로 불린 이 냄비는 1천 세트가 판매 시작 1시간 만에 매진됐습니다.
이어 2005년에 18개였던 가동업체가 2007년에 65개, 2009년 117개 등으로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후 정체되기 시작해 2011년에 123개를 기록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북한 근로자는 2004년 55 명을 시작으로, 2007년에 2만 명, 2009년에 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새로 입주하는 기업이 크게 줄면서 북한 근로자 수 증가도 둔화되는 양상을 보여, 지난 해 1월에야 5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는 5만3천 명 선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지난 2009년 이후 입주기업체 수와 북한 근로자 수가 별로 늘지 않았지만, 개성공단 생산액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2005년 1천5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생산액이 2007년 1억8천5백만 달러, 2010년 3억2천만 달러, 2012년 4억7천만 달러 등으로 계속 증가해 지난 2월 현재 누적생산액이 2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개성공단의 생산액이 꾸준히 증가한 것은 북한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 그래도 인원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북쪽 근로자들의 생산성, 기술이 향상되고, 그리고 처음보다는 열심히 하려는 의욕들이 합쳐져서 꾸준한 생산량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나 분석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개성공단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8년 들어 개성공단 내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하고, 공단에서 남측으로의 인력과 물자 통행시간을 제한하던 북한은 급기야 군사분계선을 통한 모든 육로 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9개월 후 '12.1 조치'가 해제되면서 개성공단은 잠시 정상화되는 듯 했지만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다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녹취: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고귀한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교류협력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한국 정부는 5.24 대북 제재 조치를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확대나 새로운 투자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는 공단 출입이 일시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긴장 속에서도 계속 정상적으로 가동됐습니다.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서 개성공단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남북이 모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입주기업들은 이달 초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할 때도 공장 가동에 별다른 지장은 없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당시 `VOA'와의 인터뷰에서 공단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기들을 여러 차례 무사히 지나온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에도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옥성석 개성공단 기업협회] “우리가 북한의 핵실험 연평도 천안함 때도 개성공단은 아무 영향이 없이 유지해왔기 때문에 주재원들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북한은 지난 달 27일 개성공단 입출경에 사용된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차단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는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하고 남측으로의 귀환만 허용했습니다.
이후 8일에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를 취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4월 18일]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이어 북한은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제안한 당국간 실무회담 제의마저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국민 보호 차원에서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한국 측 근로자 전원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은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사실상 잠정폐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지난 10년간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 온 개성공단의 폐쇄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