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의 대화 제의에 비핵화 조건 강화

미국, 한국, 일본의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19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만나 대북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신스케 수가야마 일본 6자 수석대표,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특별대표, 조태영 한국 6자 수석대표.

미국은 북한의 고위급 회담 제안에 대해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면서 비핵화와 관련한 국제 의무부터 먼저 이행하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서두르는 대신 오히려 협상의 문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 백성원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백성원 기자. (네) 미국 정부가 내세우는 대북 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됐죠?

기자) 예. 19일 미-한-일 6자회담 수석대표의 워싱턴 회동에서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국무부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합의 사항을 공개했는데요.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이 의미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 한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길이 있다는 점,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이행해야 할 의무에 초점이 맞춰진 건데, 사실 그게 새로운 요구는 아닌 걸로 아는데요.

기자) 물론 북한의 비핵화는 늘 대화의 선결조건이었습니다. 북한이 외부와 관계 개선을 원하면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걸 먼저 증명해라, 그래야 6자회담도 열릴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일관되게 이런 입장을 강조해왔죠.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 같지만, 어떻게보면 모호한 구석도 없지 않은 게요. 비핵화에 진지하다는 걸 어떤 식으로 증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대화 재개 전에 비핵화를 마쳐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행 조치를 취하라는 건데요. 그럼 어떤 단계까지를 그런 조치로 인정해 줄 것인지, 미국은 ‘2.29 합의’가 무산된 이후 공개적으론 그 기준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진행자) 대신 국제 의무를 준수하라, 검증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라, 계속 이런 포괄적인 표현을 써 왔던 걸로 기억되네요.

기자) 맞습니다. 기자들이 집요하게 질문을 해도 구체적인 이행 과제에 대한 대답은 없었습니다. 다만 국무부 고위 관리들이 비공식 석상에선 북한이 2.29 합의를 비롯한 미국과의 약속을 번번이 깬 상황에서 아무 일 없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순 없는 것 아니냐, 지금 당장 어떤 특정 조치를 밟으라고 조목조목 나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얘길 해 왔습니다.

진행자) 북한과의 대화에 당장 나서진 않겠다는 뜻일까요?

기자) 적어도 현장에선 그렇게 이해가 됐습니다. 북한이 제출해야 할 숙제가 있긴 한데, 그렇다고 그걸 당장 대화 재개와 결부시키는 건 시기상조라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제안한 이후엔 국무부 대변인의 말을 통해서도 미국 정부의 속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는데요. 북한의 회담 제안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6자회담 참가국들과 조율을 통해 북한과 대화에 열린 자세를 취할 것이다, 최근 이런 반응을 보였거든요. 말하자면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서만 대화하지 북한과 단독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 미-한-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서 미국이 바로 그 점을 명확히 할 것인지가 관심사였는데요. 결국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거듭 확인하는 선에서 회담이 끝났단 말이죠. 그게 미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될 수 있을까요?

기자) 국무부 발표는 물론 기존 입장을 좀 더 강조하는 수준이었습니다만, 이번 회담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발언에서 미국 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조 본부장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선 미-북간 ‘2.29 합의’ 내용보다 강화된 비핵화 조치를 북한이 이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런 얘길 했거든요. 말하자면 미국도 북한에 더욱 무거운 의무를 부과하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진행자) ‘2.29 합의’ 이상의 수준이라면 어떤 조치들이 있을까요?

기자) 조 본부장이 그 부분까지 밝히진 않았지만, 예상은 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 먼저 지난 해 도출된 ‘2.29 합의’를 좀 들여다 보면요. 미국의 식량 지원을 대가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국제원자력기구 감시단 입북 허용 등의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는 게 골잡니다. 그럼 이보다 강력한 비핵화, 소위 플러스 알파에 해당되는 내용은 뭔가, 일단은 ‘핵 포기’ 원칙 표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입니다.

진행자) 그 점은 앞서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이 언급했던 조건 아닌가요?

기자) 얘기가 나왔었죠. 윤 장관이 지난 달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 포기와 9.19 공동성명을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당연히 미국 정부와 조율을 거친 결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핵 포기’ 원칙 표명이 ‘2.29 합의’ 플러스 알파에 해당되는 부분이 아니겠느냐, 그런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핵 포기 원칙을 천명하라는 요구는 중국과도 이견이 없는 공통목표 아니겠습니까? 그 밖에 9.19 공동성명에 포함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도 조건이 될 수 있겠구요. 영변 경수로 건설 중단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준수, 이런 부분들이 플러스 알파의 내용으로 가능합니다.

진행자) 그런데 북한이 ‘2.29 합의’를 뛰어넘는 약속을 해야 한다, 이런 입장을 미국이 직접 밝히진 않고 있죠?

기자) 예. 아직까진 조태용 본부장 말이 전부입니다. 국무부에 거듭 문의를 해 봤습니다만, 3국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다는 19일 보도자료 내용 외엔 밝힐 게 없다는 반응입니다. 북한이 국제 의무를 준수하고 신뢰할 만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게 먼저라는 원론적인 입장 뿐이지 ‘2.29 합의 플러스 알파’라는 새 전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이미 밝힌 합의 내용 조차 국무부는 확인해 주지 않고 있는 건데 상당히 신중한 태도입니다.

진행자) 예. 이전보다 더욱 강한 의무를 지게 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주목되는군요. 백성원 기자와 함께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