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미군 젠킨스 "북한 떠난 후에도, 김일성 세뇌 안지워져"

찰스 젠킨스 (자료사진)

일본에 정착해 살고 있는 월북 미군 찰스 젠킨스 씨가 오랜만에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기념품 가게 직원으로 일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지금도 북한에서 강제로 암기해야 했던 김일성 교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김연호 기잡니다.

미국의 유력 월간지 ‘애틀랜틱’이 최신호에서 월북 미군 찰스 젠킨스 씨에 관한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현재 일본 니가타 현의 유명 관광지 사도섬에서 역사박물관 기념품 가게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에게 일본 과자 센베를 팔고 있는데, 젠킨스 씨를 알아보는 관광객들이 꽤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젠킨스 씨와 부인 소가 히토미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아름다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젠킨스 씨 부부가 북한에서 겪은 일들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1965년 비무장지대에서 주한미군 육군 중사로 근무하던 젠킨스 씨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되는 게 두려워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자유가 아니라 감시와 핍박이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은 뒤 북한 군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대미 선전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러다 1980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소가 히토미 씨와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살았습니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부인이 먼저 일본으로 돌아오고, 2년 뒤 젠킨스 씨도 두 딸과 함께 북한을 떠나 부인과 재회했습니다.

사도섬에서 가족과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주체사상이란 말이 나오면 북한에서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강제로 암기해야 했던 김일성 교시가 기계적으로 입에서 줄줄 나옵니다. 한 마디라도 틀리면 사상이 해이하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자아비판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부인 히토미 씨가 30여 년 전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됐던 곳 근방이라는 사실도 젠킨스 씨 가족에게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젠킨스 씨는 자신이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다면, 두 딸은 아마도 한국에서 간첩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납치된 외국인들 중에 가족이 평양에 볼모로 붙잡힌 채 해외에서 간첩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는 겁니다.

젠킨스 씨는 북한 당국이 그를 반역자로 간주하고 보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냐는 질문에 ‘밤에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젠킨스 씨는 지난 2008년 북한에서 겪은 일들을 담은 회고록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를 출간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보복을 우려해 회고록 발간을 극구 반대하는 아내에게 젠킨스 씨는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말할 때가 됐다며 출간을 강행했습니다.

VOA 뉴스 김연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