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조사위, 북한인권 청문회 나흘째...국군포로 증언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마이클 커비 위원장이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린 북한 인권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가 서울에서 개최 중인 북한의 반인도주의 범죄 관련 청문회가 오늘 (23일)로 나흘째 계속됐습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전협정을 한 달 앞둔 1953년 6월, 중공군과 싸우다 포로로 잡힌 한국군 유영복 씨는 북한으로 끌려가 47년을 살다 지난 2000년 탈북했습니다.

유 씨는 함께 포로로 잡힌 한국 군 600여 명과 1953년 8월부터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모나즈 광산과 북한에서 제일 규모가 큰 함경남도 검덕 광산에서 심한 노역에 시달렸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 년 뒤 북한 공민증을 발급받았지만 광산에서의 고된 노역과 국군포로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유영복 / 국군포로] “국군포로라는 신분 때문에 차별과 멸시 당하는 그것이 제일 서럽고 그리고 북한 여성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자식들까지도 통제하고 감시하고 외부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태어난 자식들도 광산 탄광에서 일하게 했지요. 제가 있던 광산은 검덕 광산이지만 함경북도에 아오지 탄광이 있어요. 거기에 많은 국군포로들이 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비참한 생활이 오래 가다 보니까 거기서 혹사 당해서 많은 국군포로들이 죽고...”

유 씨는 이어 국군포로 80여 명이 한국에 왔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피해가 갈까 선뜻 나서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서, 북한에서 고향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국군포로 전우들을 위해서 증언을 계속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증인으로 나선 납북자 가족 안용수 씨는 13살 터울의 형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북한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는데 북한 방송에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와 온 가족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동네 주민이 듣고 알려줘 한국 국방부에 신고했다는 겁니다.

안 씨는 1965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비밀리에 전쟁 참여에 관한 군사협정을 맺은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 군 1명에 미화 3천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려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안용수 / 납북자 가족] “북한은 그 당시 우리보다 GNP가 높았는데 한국 군 1 명을 넘겨주면 3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3천 달러는 당시 육군 중장의 연봉과 맞먹을 정도의 거액이었습니다. 외무부 기밀문서에 의하면 7 명이 확실히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 기록돼 있고 탈북한 북한 고위 장교를 만나보니까 20 명 정도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됐다가 납북된 것으로 보여지고 있고...”

북한 인권실태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온 마이클 커비 위원장과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세르비아 인권 운동가인 소냐 비세르코 등 COI 조사위원들은 오는 24일까지 서울에서 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공개청문회를 진행합니다.

한편 북한은 유엔 COI가 서울에서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 활동을 벌이는 데 대해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남북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때에 국제기구를 끌어들여 있지도 않은 ‘인권’을 걸고 넘어진다면 대화 분위기가 원점으로 되돌려질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민족끼리’는 이어 북 인권 소동은 대결의 불씨라고 할 수 있다면서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매체가 COI 활동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