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중국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동북아 안보질서] 1. 중국의 의도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 호가 지난달 26일 동중국해에서 훈련 중인 가운데, 한 승무원이 갑판에서 해상을 점검하고 있다. (자료사진)

중국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면서 동북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미국도 중국의 현상변경 움직임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저희 ‘VOA’는 세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배경과 의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연호 기자입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 달 23일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습니다.

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동중국해 대부분을 포함하면서 일본의 방공식별구역과 상당 부분 겹치고 있고 한국, 타이완의 방공식별구역과도 일부 중첩돼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고 있는 센카쿠, 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포함하고 있어 일본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한국의 관할 아래 있는 이어도 역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돼 있어 한국이 대응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방공식별구역은 주권이 미치는 영공은 아니지만 비행 물체를 식별해 필요하면 군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영토와 영해 밖에 설정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영공 방위를 명분으로 군사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규제하는 국제법이 따로 있지 않고 국가가 임의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 타이완도 이미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있는만큼 중국도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절차와 내용에서 주변국들을 상당히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게 문제입니다. 에릭 맥베이든 미 해군 예비역 제독입니다.

[녹취: 에릭 맥베이든, 미 해군 예비역 제독] “It’s rather the timing…”

중국이 사전에 주변국들과 방공식별구역의 범위에 대해 협의를 하고 미리 설정 계획을 알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중국 국방당국은 방공식별구역을 지나는 모든 항공기들에 대해 사전에 비행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방어적 긴급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멕베이든 예비역 제독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자칫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에릭 맥베이든, 미 해군 예비역 제독] “There could be mid-air…”

일본과 중국의 군용기들이 상공에서 부딪히거나 상대방의 움직임을 오판해 공격에 나서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건 센카쿠 열도를 포함해 주변국들과의 해상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미 국방장관실에서 동아시아 담당 선임자문관을 지낸 제임스 쇼프 씨입니다.

[녹취: 제임스 쇼프, 전 미 국방장관실 동아시아 담당 선임자문관] “This is overall quite consistent…”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어업과 광물 자원 등 경제적 이익과 통행권을 확대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줄곧 추구해왔고, 이번 방공식별구역 설정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군사전략적으로 외연 확대를 꾀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아시아정책실장입니다.

[녹취: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실장] “China’s defense plan was…”

최근까지 중국의 동부와 남부 지역 본토방어 계획은 해안과 국경선에 머물렀지만 군사적 역량이 커지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군사방어선을 확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시 실장은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통해 주변국들에 더 이상 중국 인근의 비행 활동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보니 글레이져 중국연구실장은 중국이 최근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주변국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글레이져 실장은 특히 중국의 국력이 점점 강해지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이번 사태의 중요한 대목으로 꼽았습니다.

[녹취: 보니 글레이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중국연구실장] “I think there is far greater…”

시진핑 주석이 당, 정, 군을 장악하면서 방공식별구역 설정 과정에서도 과거에 비해 훨씬 긴밀한 내부 조율이 있었다는 겁니다.

글레이져 실장은 시 주석이 중국의 안보 이해에 관한 한 단호한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국내적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시진핑 시대를 맞아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새로운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그동안의 평가를 무색하게 합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어려운 외교적 문제를 군사적으로 풀어가려는 구시대적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미-중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예단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아시아정책 실장입니다.

[녹취: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실장] “…”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상 수준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주요 현안을 해결할 가능성은 계속 열려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냉전으로 치달을 위험을 안고 있다는 분석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부시 실장은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미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을 취소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발적인 조치가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에 따라 내린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운용에서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제임스 쇼프 전 미 국방장관실 동아시아 담당 선임자문관입니다.

[녹취: 제임스 쇼프, 전 미 국방장관실 동아시아 담당 선임자문관] “Japan and China have talked about…”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중국과 일본이 배타적경제수역의 중첩 문제를 풀었던 전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양측이 중첩되는 배타적경제수역에서는 자원 채취를 하지 않기로 합의해 분쟁의 소지를 없앴던 것처럼, 중첩되는 방공식별구역에서도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쇼프 전 자문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쇼프 전 자문관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이 쉽게 풀릴 수 없는 만큼 이 문제가 방공식별구역 사태 해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김연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