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2013 북한] 2. 핵 개발과 경제발전 '병진노선'

지난 2월 북한 평양에서 3차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대규모 군중대회가 열렸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2년차인 올해 대내외 정책 방향과 관련해 국제사회에 크게 엇갈리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북한 내부정세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은데요, `VOA’는 2013년을 마무리하면서 `2013년 북한'을 살펴 보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김정은체제의 핵심 정책목표인 이른바 `병진노선'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이연철 기자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3월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을 병진한 새로운 전략적 노선,' 이른바 ‘병진노선’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김정은] “ 핵 무력을 강화 발전시켜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 큰 힘을 넣어 우리 인민들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강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략적 노선입니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채택한 건 이 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김일성 주석은 1962년 경제와 국방 건설의 병진노선을 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옛 소련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제보다 군대를 중요시하는 선군정치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잇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해 말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올해 초 3차 핵실험 성공을 바탕으로 병진노선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제시했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통해 재래식 무기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국방비를 줄이고 그 돈을 주민생활과 관련된 경제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은 올들어 다양한 경제정책을 시도하며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먼저, 외자 유치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특구에 대한 각종 특혜를 약속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손짓했습니다.

지난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강성대국 완성을 위해 경제 건설에 힘쓸 것이라며 구체적 방법으로 경제개발구, 즉 경제특구를 창설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경제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감으로써 이 땅 위에 천하제일의 강국 인민의 낙원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웅대한 구상을 한 몸 바쳐...”

이를 위해 5월에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경제특구를 확대하는 내용의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공포했습니다.

한국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새 특구법이 기존의 특구법들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로, 업종별로 특화된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꼽았습니다.

[녹취:임을출 경남대 교수] “예를 들면 농업개발구, 공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이런 식의 특화를 해서, 지역별로 특화를 해서 경제특구를 만들겠다고 밝힌 점이 다릅니다.”

이어 11월에는 전국 각지의 경제개발구 13곳과 대외개방을 위한 신의주 특구의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토지와 세금 등에 대한 각종 특혜를 약속했습니다.

북한은 또한 대내적으로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조치들에 나섰습니다. 농민들에게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개혁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한 겁니다.

협동농장에서는 20 명 정도였던 분조의 규모를 3 명에서 5 명으로 줄였고, 분조가 일정량의 농작물을 국가에 납부하면 잉여분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기업에도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국가에 납품하고 남은 잉여분을 독자 매각하거나 종업원에게 분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부 기업소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한 새로운 임금체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민간단체인 남북물류포럼의 김영윤 회장은 북한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조치들을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김영윤 남북물류포럼 회장] “사회주의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만큼 가져간다, 이렇게 돼 있는데, 새 조치들은 종래의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것과 180도 다른 것이라는 거죠.”

이밖에 북한은 평양과 지방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체육시설과 위락시설 등 전시성 사업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지난 해 평양민속공원에 이어 올해는 대성산 종합병원과 해당화관, 마식령 스키장을 잇따라 건설했습니다. 또 평양체육관과 문수물놀이장, 갈마호텔, 압록강 유원지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였습니다.

북한은 이와 동시에 핵 무력도 계속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지난 10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내용입니다.

[녹취: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외부의 핵 위협이 가중되는 한 그에 대처할 핵 억제력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여기서 우리는 어디에도 구속될 것이 없다.”

그러나 서방세계는 북한의 병진노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핵 개발이 같이 갈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 “경제발전과 핵 개발을 동시에 병행시키겠다는 새로운 도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지난 9월 베이징을 방문한 자리에서, '병진노선'은 북한 주민들을 위한 번영의 희망은 없고 핵 개발에만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막다른 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는 북한의 병진노선은 타협의 산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경제개발을 원하지만 핵 무장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진노선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병진노선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해거드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녹취:해거드 교수]

스스로 경제를 재건할 능력이 없는 북한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필수적이지만,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 유치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해거드 교수는 또 북한 내부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경제관리 개선조치들도 언제든지 다시 번복될 수 있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강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내부 권력구도 변화가 김정은 체제의 병진노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윤용석 북한 조선경제개발협회 국장은 `AP통신'에, 북한은 앞으로도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윤용석 국장] “장성택 일당이 우리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북한의 경제정책에는 다른 변화가 일체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도 경제발전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펼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는 병진노선을 계속 추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앞으로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뱁슨 전 고문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숙청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지, 그리고 다른 중요한 경제 관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 북한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VOA가 연말을 맞아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올해 북한의 대외관계를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