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2명이 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한인 실향민 단체가 직접 북한 당국과 접촉해 이뤄진 첫 가족 상봉 사례여서 주목됩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노구를 이끌고 평양에 다녀온 이산가족은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86살 방흥규 씨와 77살 이건용 씨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18일 북한에 도착해 8박9일 동안 머물며 헤어진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특히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방흥규 씨에게는 60년 만에 밟아보는 북한 땅이었습니다.
[녹취: 방흥규 씨] “눈물도 많이 나고, 서럽고, 전쟁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꿈에도 그리던 누나는 4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평양호텔 등에서 누나의 아들, 딸과 손주를 만나 고인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처음 만나는 조카들이었지만 해주에서 올라온 그들을 보자마자 목이 메었습니다.
[녹취: 방흥규 씨] “누나가 53년에 남편을 잃고, 30살쯤 되기 전에 4살, 10살 아이들을 데리고 50년, 60년 간 산 게 상당히 힘들게 살았어요. 과부로 말이죠.”
방 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묘를 납골당으로 바꾸면서 누나의 흔적을 안치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뒀습니다.
하지만 누나 유골의 일부라도 반출했으면 하는 희망은 이번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방흥규 씨]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좋겠죠. 자기 딸을 거기다 놓으면. 현실에 있어선 좀 힘들어요.”
77살 이건용 씨는 그동안 두 번째 이산의 아픔을 겪어 왔습니다.
지난 1988년 평양에서 38년 만에 만난 형은 4년 뒤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 형수와 조카 5남매의 행방 마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이건용 씨] “사는 거 보니까 마음이 좀 놓이고, 오래 살면 또 만나는 기회가 있구나 싶었죠.”
이 씨는 평양호텔에서 2박3일을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이 씨가 가족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온 식구가 안방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북은 한인 실향민 단체가 북한 당국과 직접 협의해 성사시킨 첫 가족 상봉 사례가 됐습니다.
2년 만에 1차 상봉 절차를 마무리한 ‘북가주 이북5도민 연합회’ 백행기 사무총장의 설명입니다.
[녹취: 백행기 사무총장] “민간단체에서 실행한 첫 케이스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앞으로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과 방문을 위해서 계속해서 미국 정부와 북한 당국과의 긴밀한 접촉으로 많은 이산가족들의 가족 상봉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백 사무총장은 지난 2012년 11월 회원들의 북한 내 가족 상봉 가능성을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타진한 뒤 1년 만에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이어 반신반의하는 연합회 관계자들과 이산가족들을 설득하고 북한 현지의 가족 생사 확인을 거쳐 만남을 현실화시키기까지 꼭 1년이 더 걸렸습니다.
백 사무총장은 북한에서 숨진 가족의 유해 일부라도 보다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하는 유족들이 많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충점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백행기 사무총장] “이산가족들이 원하고 있는 돌아가신 가족들의 유골을 일부나마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계기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접근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북한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우선은 서신 교환을 통해 안부를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실제 상봉에 나서는 체계적인 절차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가주 5도민 연합회’는 오는 13일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이번 가족 상봉 과정과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