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 3년째를 맞아 올 한 해도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뉴스가 많았습니다. ‘VOA’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북한인권, 남북관계, 북한의 비대칭 군사력, 북-러 관계,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 미-북 관계 등을 주제로 여섯 차례에 걸친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순서로 강화된 북-러 협력 관계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김연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가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대북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위급 인사들의 북한 방문이 잦아졌습니다.
지난 3월과 4월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과 유리 트루트녜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잇따라 평양을 방문해 경제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트루트녜프 부총리는 북한과 경제협조합의서를 조인하고 북한 인민보안국을 방문해 소방차 50대를 선물하는 등 북한과의 협력 의지를 과시했습니다.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지난 10월 평양을 또다시 방문해 북한과의 경제협력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한국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용화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물론 과거에도 러시아 고위인사들의 방북은 있어 왔는데요, 특히 2001년에서 2002년 사이 북-러 모스크바 선언 당시 김정일 위원장도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기도 했죠. 하지만 북한의 1,2차 핵실험 이후에는 최근같이 빈번하게 교류가 실시된 적은 사실상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도 러시아의 적극적인 구애에 화답했습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지난 10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 트루트녜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 니콜라이 페도로프 농업부 장관과 만났고, 귀국길에 극동 지역을 두루 돌면서 농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어 지난달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최 비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최 비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언급했다고 밝혔습니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최고위급을 포함한 접촉을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사실상 정상회담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 뒤 러시아 대통령궁은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내년 5월 2차대전 전승기념일 행사에 초청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김 제1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게 되면 지난 2011년 집권 이후 첫 외국 방문이 됩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급속한 관계 진전에는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기업연구소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 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 “Its roots can be traced...”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가 새로운 전략적 계산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출구를 모색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역결재 방식을 러시아 루블화로 대체하고 북한이 옛 소련 시절 졌던 110억 달러의 차관 가운데 100억 달러를 전격 탕감해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겁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의 전략 변화는 대외관계를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의 한국과장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입니다.
[녹취: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사회과학원 한국과장] “They think the political moment is right...”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미국이 대립하고 있는 지금이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핵 문제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북한에 외교적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특히 경제 분야에서 올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진 채무를 대부분 탕감 받으면서 경제협력의 걸림돌이 제거됐고, 양국 간 무역은 지난 10월부터 루블화로 결제되고 있습니다.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오는 2020년까지 두 나라 교역을 10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루블화 결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라진-하산 구간 철도를 지난해 개보수한 러시아는 지난 10월 북한의 철도 현대화 사업에도 착수했습니다.
당시 북한을 방문한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은 철도 개건 착공식에 참석해 이 사업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보도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대규모 협조계획 실현의 첫 단계인 철도개건이 두 나라 사이의 경제협조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사업으로 된다는데 대해 언급했습니다.”
갈루슈카 장관은 ‘VOA’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업 타당성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습니다.
러시아 극동개발부에 따르면 앞으로 20년에 걸쳐 3천500km 길이의 북한 내 철로와 터널, 교량 등이 개보수되며, 2백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업자금은 석탄과 비철금속, 희귀금속 등 북한 내 지하자원 수출로 충당됩니다.
남북한과 러시아가 북한 라진항을 중심으로 벌이는 물류협력 사업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석탄을 라진항을 거쳐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범사업이 이달초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업을 남북한과 러시아 3국 협력의 첫 결실로 평가했습니다. 임병철 한국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 “우리 경제 혁신과 동북아의 평화, 그리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기반 구축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업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년에 러시아와 한국이 본계약을 체결하면 남북한과 러시아 3자 합작을 통한 물류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사업의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의 참여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입니다. 한국 통일연구원의 임강택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과 러시아가 합작회사를 만들어서 그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건데, 정확하게 지분 가격이 어떻게 형성돼 있고 얼마인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거죠.”
한국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남-북-러 3각 협력사업의 성공은 사실상 한국의 참여 여부가 관건이라며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 측이 지분 참여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경제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물동량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의 톨로라야 한국과장은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 역시 한국의 참여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사회과학원 한국과장] “If they would invest...”
한국이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에 투자한다면 사업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겁니다.
톨로라야 과장은 러시아 측이 제시한 사업비 2백50억 달러는 북한 철도 시스템의 절반을 현대화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추산한 수치에 불과하며, 러시아가 이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이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고위급 인사들을 한국에 보내 북한에 대한 공동투자를 계속 촉구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김연호입니다.
2014년 북한을 돌아보는 연말특집 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다섯 번째 순서로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대해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