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북측 대규모 지원 요구로 불발"

지난 2009년 4월 이명 당시 한국 대통령(오른쪽)이 북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운데), 김양건 통일전선부부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했다.

이명박 전 한국 대통령의 임기 5년 간의 이야기가 담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일부 공개됐습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비밀접촉, 천안함 폭침 등과 관련한 비공개 내용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2010년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남북 간 고위 인사의 비밀 교차방문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08년에서 2013년까지 한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지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 직후인 2010년 7월 한국 국가정보원 고위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이 2010년 6월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 명의로 연락을 해 국정원 고위 인사와의 만남을 요구했다면서 북측의 요구로 방북이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방북한 국정원 인사를 통해 남북 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먼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폭침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전해왔고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라 여겨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설명했습니다.

이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를 찾는데 50일이 소모됐다면서 무력보복 조치를 취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러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2월에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한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2010년 12월 5일 북측 인사가 서울에 왔으며 남북한은 협의 끝에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북측 인사는 예정보다 하루 더 서울에 머문 후 돌아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북측 인사가 북한으로 돌아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처형됐다는 소식을 2011년 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남북한이 2011년 초 뉴욕에서, 5월 베이징에서 추가로 만남을 가졌지만 천안함 폭침 사과 문제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한국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의 이른바 ‘싱가포르 접촉’ 당시 북한이 쌀과 비료 등 대규모 경제 지원을 요구한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이어 11월 7일과 14일 개성에서 한국 통일부와 북측 통일전선부 간 실무접촉이 잇달아 열렸지만 북측이 정상회담 조건으로 옥수수 10만t과 쌀 40만t, 비료 30만t, 북측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등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이 전 대통령은 밝혔습니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남북 간 다리 역할을 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2009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는데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뜻을 전달했고 2주 뒤 태국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난 원자바오 총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또한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 2011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20~30cm 높이의 단상에도 혼자 올라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3개월 후인 2011년 12월 사망했습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줘 감사하다’는 내용의 이 전 대통령의 친필 서한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북한의 요구가 선거 동안 북한이 자신을 비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자신이 당선됐다는 의미로 여겨져 어이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