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의 의사 진행 방해 '필리버스터'

테드 크루즈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 지난 2013년 9월 정부 예산안 표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 의사 진행 방해 연설을 하고 있다.

주요 미국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필리버스터 즉 의사진행방해와 PAC이라고 하는 정치활동 위원회 이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현숙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안녕하십니까?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앞서 뉴스 헤드라인에서 이번 회기 상원에서 민주, 공화 양당이 필리버스터를 두고 재미있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이 필리버스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기자) 지난 2013년 9월, 상원 의회 연단에 오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연설을 잠시 들어보시겠습니다.

진행자) 네, “녹색 달걀과 햄을 좋아하니?” 라는 이 이야기, 미국의 유명한 동화책인 “녹색 달걀과 햄’ 내용 아닌가요?

기자) 맞습니다. 공화당 소속인 테드 크루즈 의원은 이날 동화책뿐 아니라 영화 스타워즈 이야기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등을 주절주절 이어갔는데요. 밤을 새운 것은 물론 음식도 먹지 않으며 연단을 점거한 채 무려 21시간 19분 동안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청취자 분들이 들으시기엔 뭐 이런 이상한 행동이 다 있나 싶으실 텐데요. 테드 크루즈 의원의 이 기이한 행동이 바로 오늘 설명할 필리버스터 즉 합법적 의사진행입니다.

진행자) 테드 크루즈 의원이 이렇게 20시간 넘게 연설을 이어간 이유가 뭔가요?

기자) 당시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법안인 오바마 케어를 포함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수당인 공화당 소속의 크루즈 의원이 필리버스터로 밤샘 연설을 이어간 겁니다. 이렇게 미국 의회에서 고의적이고 또 합법적인 방법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바로 필리버스터 라고 합니다.

진행자) 우선 필리버스터라는 말 자체가 좀 어려운데요. 말의 뜻부터 알아보고 갈까요?

기자) 필리버스터는 네덜란드어 ‘해적’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해적은 순항하고 있는 배를 가로막고 약탈을 일삼죠? 필리버스터 역시 토론을 가로막고 법안을 표결에 부치는 걸 방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대신 이를 합법적이고 점잖은 방법으로 하는 겁니다.

진행자) 그럼 구체적으로 의사 진행 방해를 어떤 식으로 하는 건가요? 크루즈 의원처럼 동화책을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기자) 네, 괜찮습니다. 의원 한 사람 또는 소수당이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또는 다수당이 법안을 표결에 부치는 걸 막을 수 있는데요. 표결을 하면, 다수당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표결이 진행되기 전에 발언권을 얻어서 다른 의원들이 아무것도 못 하게 계속 발언을 하는 거죠. 동화책을 읽는 것부터 법안 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등 어떤 식으로든 의사 진행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의회가 활발하게 법을 만드는데 있어 이 필리버스터가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필리버스터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겠죠?

기자) 물론입니다. 필리버스터의 취지는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소수의 목소리도 보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수당이 숫적인 우세를 이용해 독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필리버스터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거죠. 원래는 미국 하원에도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폐지되고 상원에만 필리버스터 제도가 남아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필리버스터에도 규정이 있다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동안엔 연단에 몸을 기대거나 자리에 앉아서도 안되고, 음식물이나 물을 섭취해서도 안되고요. 발언을 멈추거나 화장실에 가서도 안됩니다.

진행자) 하지만 쟁점이 되는 모든 법안마다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행사하면 의회가 좀 어지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기자) 있습니다. 의원 60명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토의를 중단시키고 표결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원의 경우 50개 주에서 각각 2명씩 선출돼서 총 1백 명이거든요? 다수당이라고 해도 60명 이상의 찬성을 얻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죠. 그래서 가끔 60표를 얻기 위해서 의원들은 초당적인 연합을 이루기도 합니다. 원래 필리버스터 차단을 위한 정족수는 정원의 3분의 2였는데요. 지난 1975년 이를 60표로 낮춘 바 있습니다.

진행자) 필리버스터 제도는 또 상원들이 법안을 통과시킬 때뿐 아니라 고위 공직자를 인준할 때도 사용되는 거로 아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대통령이 제출한 고위 공직자의 경우도 상원에서 이 필리버스터를 이용해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말에 고위 공직자 인준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차단 요건을 완화하는 법안을 상원이 통과시켰는데요. 당시 상원 다수당이던 민주당은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고위 공직자 인준안이 공화당의 저지로 처리가 지연되는 사태가 잇따르자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는 표결의 가결 정족수를 60표에서 51표로 낮추는 안을 제안해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연방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차단하려면 여전히 6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행자) 처음 시작하면서 소개해주신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의 필리버스터, 21시간을 넘겼는데요. 역대 4번째 최장 연설 기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필리버스터를 목적으로 가장 오래 발언한 의원은 누구입니까?

기자)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이 기록을 갖고 있는데요. 지난 1957년 당시 민권법이 통과되는 걸 막기 위해서 무려 24시간 18분 동안 발언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장시간 연설기록을 남겼는데요. 하지만 당시 민권법 통과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Sting//

진행자) 생방송! 여기는 워싱턴입니다, 미국 뉴스 따라잡기 듣고 계십니다. 미국에서는 내년에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열립니다. 대선을 앞둔 올해는 정당마다 대통령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이 또 치열하게 진행될 텐데요. 대선과 관련한 미국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PAC이라고 하는 정치활동 위원회입니다. 이번엔 PAC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죠.

진행자) 미국에선 대통령이 되려면 사실 돈이 필요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군림하는 게 아니고 국민들이 손으로 직접 뽑기 때문인데요. 대통령 후보가 국민들에게 다가가 유세를 하고 또 여러 가지 공약을 알리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겠죠? 그렇다면 엄청난 부자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돈을 기꺼이 내는 후원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미국 정치인은 국민의 돈으로 선거 운동도 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될 수 있는 거죠. 오늘 소개할 정치활동 위원회, PAC도 바로 이런 미국의 정치 후원문화를 보여주는 독특한 정치자금 후원 단체입니다.

진행자) 정치활동 위원회는 그럼 어떤 정치적 인물을 지지하기 위해서만 모금을 하는 단체인가요?

기자)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어떤 정치적, 사회적 목표를 갖고 이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후보를 당선시키거나 아니면 그 후보를 반대하기 위해서도 조직을 구성할 수 있고요. 또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도 PAC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럼 이 PAC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PAC을 구성할 수 있는데요. 선거철이 되면 다양한 PAC들이 구성돼 선거자금을 모으고 지지 후보를 지원하는 활동들을 벌이곤 합니다. 하지만 팩은 미국 선거자금 개혁법에 따라 정치자금의 출처와 지출 사항이 엄격하게 공개돼야 하고, 개인과 단체의 기부액수와 방법도 엄격하게 규제돼 있습니다.

진행자) PAC을 통해 후원할 수 있는 정치 후원금의 한도도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2013~14년의 경우 연방 선거위원회가 각 선거마다 개인이 후보자 혹은 후보의 후원 위원회에 줄 수 있는 기부금을 1인당 최대 2천 6백 달러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기부금을 주는 주체가 정치 활동 위원회 즉 PAC일 경우도 후보 개인에게 각 선거마다 후보 1인당 2천 6백달러를 줄 수 있는데 이때 PAC이 50명 이상의 후원자가 6개월 이상 등록돼 있는 단체라면 최대 5천 달러까지 후원을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선거철이 되면 슈퍼 PAC이라는 말도 많이 언급되던데 일반 PAC과 슈퍼 PAC의 차이가 뭘까요?

기자) ‘Super PAC’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초강력 정치활동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존의 PAC이 특정 후보나 정당에 직접 그 PAC의 이름으로 정치자금을 전달한다면 슈퍼팩은 특정 후보를 직접적으로 지지할 수 없고 대신 TV 광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후보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슈퍼팩은 지난 2010년 기업이나 노조, 이익단체가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위해 광고나 홍보비에 지출하는 것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활동하게 됐는데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슈퍼팩을 만들어 TV 광고 등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쏟아 부었습니다.

진행자) 네, 김현숙 기자, 잘 들었습니다.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