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신동혁 씨의 탈출기를 그린 ‘14 호 수용소 탈출’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 포스트' 신문 기자가 6.25전쟁 직후 미그 15 제트기를 몰고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공군 노금석 대위 탈출기를 발간했습니다. 당시 젊은 지도자 김일성 주석과 20살을 갓 넘긴 노 씨가 대면하는 순간을 포착해, 두 사람이 현실을 어떻게 인식했고 이후 얼마나 다른 길을 걷게 됐는가를 나란히 비교하고 있습니다. 16일 하든 씨와 함께 워싱턴을 방문한 노금석 씨는 이날 ‘VOA’와의 단독인터뷰에서 60여 년 전 두 차례 만난 김일성 주석에게서 독재와 공산주의의 비극을 미리 엿봤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83살의 노 씨는 1953년 망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델라웨어대학을 졸업하고 미 방위산업체 여러 곳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해 현재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잡니다.
기자) 60년 전 경험과 사건을 책에 담게 됐습니다. 어떤 계기로,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실행에 옮기신 건가요?
노금석) 제가 신동혁의 책을 읽고 (저자인 블레인 하든) 기자와 연락을 하게 됐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하든) 기자가 책을 함께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내가 책을 씁시다, 그래서 시작했어요.
기자) 참 오래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신 건데요.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노금석) 해방 후에 이북에서 고생하던 생각이 아주 생생한데, 이번에 책을 쓰게 되면 이북의 동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또 전쟁으로 인한 파괴, 그런 걸 담고 싶었습니다.
기자) 앞서 블레인 하든의 신동혁 씨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연락을 하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그 책에 대해선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노금석) 그런 일이 진짜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 그래서 내가 속으로 만약 이 기자와 내 얘기도 더 쓸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난 신동혁이 도망간 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도망가기 정말 힘들거든요. 감옥에서 나와서 그 다음에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에 가서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들어가서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상하이에 갔다는 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주 영웅적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했어요.
기자) 하지만 그 책에 포함된 신동혁 씨의 일부 증언, 특히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수감 장소나 시기, 또 관련 사건 등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죠?
노금석) 내 생각에, 어떤 곳에 있었는데 다른 곳에 있었다고 바꾼 건 큰 일이 아니죠. 저쪽이나 이쪽이나 대우는 나빴거든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죠.
기자) 오래 전에 떠나신 고향, 북한, 지금 노 선생님께는 어떤 곳으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까?
노금석) 오래 전에 떠난 고향의 친척들은 전부 세상을 떠나고, 통일이 되면 한 번 더 가보고 싶지만 세월이 지나도 통일이 안 되고 있으니까 한심하죠. 한 번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해서 아주 한심합니다.
기자) 북한을 탈출했던 게 1953년입니다. 그 뒤에 수 십 년에 걸친 한국과 북한 간의 체제 경쟁, 크게 보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의 싸움이 당시만해도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절이었는데 북한이, 그리고 공산주의가 패배할 것이라는 확신, 그런 생각조차 있었을까요, 그때?
노금석) 예, 그 때 도망갈 때 공산주의가 망할 줄 알았어요.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이북에서는 특히 군대만 훈련시키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안 하니까요. 경제가 나빠지고 음식도 나빠지고 그러니까 이북이, 국가가 망할 줄 알았지요. 통일이 될 줄 생각하고 있었지요.
기자)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계셨군요, 당시만 해도.
노금석) 그 때 이남은 자꾸 발전되고 이북은 더 나빠지니까 말이에요. 통일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통일이 안 되니까 아주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나지요.
기자) 당시 김일성을 직접 보셨거든요, 60년 전에.
노금석) 네, 제가 이북에서 두 번 봤어요. 48년도에 흥남 공장에 와서 연설할 때 한 번 봤고요. 그 다음에 51년도에 제가 (전투기) 조종사 된 후에 의주 공항에서 한 번 봤어요. 김일성이가 거기 와서, 그러니까 두 번 봤지요.
기자) 당시 어떤 사람들은 김일성에게 열광을 했었고요, 또 희망을 걸었지만 노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비관적인 전망을 갖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의 통치와 연설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노금석) 48년도에 연설하는 걸 들어보니까 연설은 잘해요. 그렇지만 제가 공산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에 김일성을 누가 타파할 수 있으면 타파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48년도에. 51년도에는 전쟁 당시인데, 그 때 이북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김일성이 아직도 이북에서 독재자로 있으니까 언제 누가 김일성을 타파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기자) 당시 마흔 살 전후였던 김일성의 연설을 직접 들으시면서 그의 아들이, 그러니까 김정일이죠, 그리고 지금 그의 손자 김정은이 이렇게 반세기 넘게 한반도의 반쪽을 통치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셨을까요?
노금석) 상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가 공산주의의 왕국이 됐거든요. 독재자들이 왕자를 왕을 시키는 것처럼. 그리고 반대하면 전부 죽이니까 할 수 없죠. 어떻게든 나라를 바꿔야 하는데 안되고. 아주 비참한 소식입니다.
기자) 지금도 탈북자들의 고민은 어느 곳에 정착할 것인가 이거든요. 가장 앞서서 선생님께서 그런 결정을 탈북자 1호로서 하셨던 건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제3국 가운데 미국을 당시에 선택한 이유는 뭘까요?
노금석) 해방 후에 당장 미국에 갈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미국이 제일 큰 나라이고 물자가 풍부하고 민주주의이고, 그래서 내가 속으로 기회가 있으면 미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때부터 항상 미국에 갈 생각이 있었어요. 만약에 내가 국경을 넘어서 남한에 가게 되면, 기회가 생기면 미국에 가겠다는 생각이 났어요. 미국에 가면 학교가 많고요, 내가 어렸을 때 책을 보니까 대학이 많거든, 미국에.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가면 대학에도 다니고 공부도 더 하고, 그럼 한국에 돌아가면 더 일을 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미국에 가고 싶어했어요.
기자) 노 선생님께서 북한을 탈출하시던 때만 해도 지금처럼 남북 간 격차가 벌어지진 않았었습니다. 이제 경제력은 물론이고요, 문화적인 이질감을 극복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 돼 버렸는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을 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금석) 기왕 이북에서 도망 나와 이남에 왔으니까, 내 생각에 이남이 아주 이북보다는 낫거든요, 더 기회가 있고,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노력을 다해서 더 배우고 일을 더하고, 그래서 행복한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 포스트' 동아시아 특파원의 새 저서 출간을 계기로, 이 책의 주인공인 전 북한 공군 대위 노금석 씨와의 인터뷰를 전해 드렸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