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한미군사령관들 "북한 평화협정 요구, 진정성 결여...한국도 협정 주체돼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북한의 거듭된 평화협정 체결 요구에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핵 문제를 덮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전략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울러 한반도 관련 어떤 협정이든 한국이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유엔총회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거듭 제안한 북한. 미-북 간 신뢰를 조성해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자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유엔군사령부와 미-한 연합사를 함께 지휘했던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을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속임수로 일축했습니다.

버웰 벨 전 사령관은 18일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다시 평화협정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에서 복무했던 벨 전 사령관은 북한의 제안에 이란과 핵 합의를 타결한 미국의 대북 협상 의지를 시험해 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요구가 현실화된다면 동북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이 흔들리는 나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존 틸럴리 전 사령관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관련 의제를 뺀 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기회주의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미국이 대담하게 정책 전환을 하면 한반도의 안전 환경도 극적인 개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 역시 그들의 과거 도발과 의무 위반 전례를 볼 때 믿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안전은 오히려 미-한 동맹으로 인해 더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겁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에서 근무한 제임스 서먼 전 사령관은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도발 이후 협상을 모색하는 반복적 양상의 일환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

그러면서 다소 안정적으로 바뀐 듯 보이는 한반도 안보 실태 역시 여전히 일촉즉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먼 전 사령관은 북한이 실제로 원하는 건 평화조약이 아니라며 다른 목적을 위한 구실로 삼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버웰 벨 전 사령관 역시 북한이 현 정전협정 체제를 권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며 비슷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녹취: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북한 정권은 미국과 한국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확산시키는 등 자국민에게 두려움을 조성하는 데 정전협정 체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지 여부와 미국 정부의 약한 고리를 시험해 보겠다는 의도 외에 어떤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는 게 벨 전 사령관의 설명입니다.

벨 전 사령관은 또 미국과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북한에 적용할 수 없다며, 쿠바는 북한처럼 핵무기를 갖춘 1백 만 대군을 보유하지도 않았고 카리브해 안보에 미치는 위협 역시 북한의 도발 수준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예를 들었습니다.

존 틸럴리 전 사령관도 북한이 실제로 평화협정을 원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영향력을 파악하겠다는 의도만 갖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 특수작전사령부 대령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학 전략안보연구소 부소장은 ‘VOA’에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핵 보유국 대접을 받겠다는 것과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맥스웰 부소장]

또 이는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들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미-한 동맹을 갈라놓기 위한 북한의 오랜 전략일 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맥스웰 부소장은 북한의 최대 이해관계는 김 씨 정권의 생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은 자신들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한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 만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평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녹취: 데이비드 맥스웰 부소장]

맥스웰 부소장은 남북통일 전에는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유린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통일은 반드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경제적 우위에 있는 자유민주 체제에 의해 주도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버웰 벨 전 사령관은 6.25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통일을 염원하는 자유민주 체제이자 주권국가인 한국이 어떤 종류의 평화 협상 과정에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벨 전 사령관은 이를 위해선 유엔이 서명한 정전협정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과 심사숙고를 거쳐야 하겠지만, 북한과의 잘못된 협상으로 가장 많은 걸 잃게 될 한국과 한국 국민이 평화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부소장도 6.25 전쟁은 남북 간의 싸움이었고 양측 모두 유엔에 의해 주권국가로 인정받은 만큼 어떤 협정이든 한국의 참여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이비드 맥스웰 부소장]

이와 관련해 미국 컬럼비아 법과대학원 노정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예로 들면서, 평화협정 체결 상대를 미국으로 못박은 북한의 주장은 논리적 문제가 있고 시대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노정호 교수] “북한에서 주장하는 평화협정은 북한하고 미국 간의 평화협정으로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게 또 하나의 법률적 문제가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소위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이 이뤄지려면 일단 당사국으로서는 한국이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노 교수는 핵무기를 보유한 채 평화협정을 맺으려고 하는 북한과, 북한 비핵화를 평화체제 조성의 필수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 한국의 이해관계가 크게 상충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요구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